지난주 토요일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열린 한국무용가 이지선 씨의 여덟 번째 발표회에서다. 정중동 동중정(靜中動 動中靜)의 승무,한을 처절하게 내뱉는 구음에 맞춰 추는 살풀이(살풀이 내내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나오려는 걸 엄청 참았다),요염한 향진무,이생강 선생의 조카 이성준 씨의 혼을 삼키는 듯한 대금 산조,김묘선 씨의 소고춤,검무 등등.필자와 함께 간 일행 모두가 국악의 향기에 깊이 빠진 밤이었다.

깊은 감동에 젖어들면 들수록 마음 한 켠엔 걱정과 우려가 커지는 건 왜일까. '경비를 어떻게 감당했을까. 남산국악당은 소극장 규모였는데 대부분 관객이 필자와 같은 초대받은 사람들 아닐까'하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그날 국악에 혼을 빼앗기면서 한류가 단순히 영화나 대중음악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국악 속에도 깊이 잠재해 있다는 걸 확신했다. 몇 년 전 한 · 프랑스 수교 100주년 행사로 프랑스 리옹에서 공연된 판소리 심청가에 프랑스 사람들이 열광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프랑스 관객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여 꿈이 아닌가 할 정도였다. 판소리를 유럽인들이 좋아하다니.이런 열광은 최근에도 재연됐다. 지난달 프랑스 파리의 7000석 규모 공연장 '르 제니스 드 파리'에서 열린 K팝 공연티켓이 10여분 만에 매진됐다. 놀라운 건 그 다음이었다. 표를 확보하지 못한 수백명의 프랑스 팬들이 파리 루브르박물관 앞에서 1회 예정된 이 공연을 2회로 늘려 달라며 시위를 벌였다. 몇 해 전 판소리에 열광하던 프랑스인이 오버랩됐다.

국악으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았을 K팝이 칭기즈칸도 정복하지 못한 프랑스를 흔들어놓는 순간이었다. 나라의 음악인 국악을 키워주고 격려하는 세심한 배려가 절실하다. 경제적 지원도 넘쳐나야 한다. 이지선 씨의 선생인 김묘선 씨는 춤인생의 고달픔을 이렇게 말했다. "누구의 눈물로도 녹지 않는 어렵고 힘든 외길 춤인생,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춤길은 혼자 걸어야 하는 삶의 수행길,그래서 아름다운 제자지만 항상 아픈 제자."

기업들은 메세나사업을 통해 문화예술 분야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쏠림현상이 심하다. 젊은 작가들의 실험정신이 가득한 작품이나 순수예술 분야의 지원은 여전히 부족한 게 현실이다. 기업 홍보에 효과가 있는 오케스트라나 뮤지컬을 지원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흥행이 잘되는 스포츠단을 운영하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게다. 알게 모르게 국악 활성화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기업인도 많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국립국악단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은 2007년 민간 기업으로선 처음으로 국악단(락음국악단)을 결성해 후원해 오고 있다. 앞으로 국악을 알리고 지원하는 기업이 더 늘어 국악한류 바람이 세계를 휩쓸 그날을 벅찬 마음으로 기대해본다.

정장선 < 국회의원 js21m@cho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