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체인지'에 목마른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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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이이다바시(飯田橋)역 입구에 있는 일본 최대 중고서적 체인 '북오프(Book-Off)' 매장.영화 및 드라마 DVD를 파는 코너 맨 앞줄에 '체인지(change)'라는 '철 지난' 일본 드라마가 꽂혀 있다. 3년 전 방영 당시 이 드라마는 두 가지 점에서 주목받았다. 하나는 일본의 '국민배우' 기무라 다쿠야(木村拓哉)가 모처럼 주연을 맡았다는 것.일본 방송계에서 기무라가 차지하는 위상은 독보적이다. 역대 일본 드라마 시청률 1위에서 5위까지가 모두 그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로 채워져 있을 정도다.
TV드라마가 잘 다루지 않는 '정치'를 소재로 삼았다는 것도 화제에 올랐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시골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다가 정계에 뛰어들고,일본 총리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젊고 활기 넘치는 주인공이 당리당략에만 얽매인 원로 정치인들을 혼쭐내는 광경에 일본 국민들은 열광했다.
'체인지'라는 제목 그대로 일본 정치판을 한번 바꿔 보자는 호소가 먹혀 든 것이다. 시청률은 20%를 훌쩍 넘기며 대박을 터뜨렸다. 북오프 매장 직원은 "요즘 국민들의 정서와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 '체인지'의 진열 위치를 다시 앞쪽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기성 정치에 실망한 소비자가 많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얘기다.
국회의원이 '공중부양'하는 진풍경까지 목도한 한국 기자 입장에서도 요즘 일본 정치는 난장판이다. 야당 정치인들은 간신히 매달려 있는 총리를 떨어뜨리려고 나무 밑동을 자르고 있고,총리는 어떻게든 오래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당 의원들마저도 '어서 내려오시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전후 최악의 재앙을 맞았다는 나라의 정치인들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모습이다.
일본 언론들은 이미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없다 치고,'차기 주자' 물색에 열중이다. 요미우리신문이 한발 앞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다음 총리는 누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득표율 1위는 마에하라 세이지 전 외상(前原誠司 · 49)이 차지했다. 아사히신문의 조사에서도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마에하라 전 외상이 다른 후보군과 차별화되는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젊다. 이번 조사에서 2위에 오른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枝野幸男 · 47)과 더불어 '40대 신예그룹'의 선두 주자다.
두 번째는 '깨끗하다'는 인상이다. 마에하라 전 외상은 올초 재일동포의 정치헌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외상 자리에서 사임했다. 정치권에서는 '한물 갔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국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마에하라가 받은 정치헌금이 5년간 25만엔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오히려 '깨끗한 정치인'으로 분류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당시 "단돈 25만엔을 받고 옷 벗는 정치인이 과연 일본에 몇 명이나 있을까"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정치 이력서'도 기존 정치인과 다르다. 일본 정치인들의 프로필에는 대부분 '족보'가 언급된다. 할아버지는 총리를 지냈고,아버지는 대신으로 활동했고….그만큼 일본 정치는 '세습'의 경향이 강하다. 마에하라 전 외상은 정치와 상관이 없는 집안 출신이다. 부친마저 일찍 돌아가셨다. 생계가 어려울 정도로 힘든 시절을 보냈다.
기무라의 '체인지'가 방영되고 나서 바로 그 다음해인 2009년.민주당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일본 자민당의 '55년 체제'를 무너뜨렸다. 연예주간지에서는 '기무라 이펙트'라는 얘기가 나왔다. 일본 국민들은 지금 또 다시 드라마 '체인지'에 빠져들고 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
TV드라마가 잘 다루지 않는 '정치'를 소재로 삼았다는 것도 화제에 올랐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시골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다가 정계에 뛰어들고,일본 총리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젊고 활기 넘치는 주인공이 당리당략에만 얽매인 원로 정치인들을 혼쭐내는 광경에 일본 국민들은 열광했다.
'체인지'라는 제목 그대로 일본 정치판을 한번 바꿔 보자는 호소가 먹혀 든 것이다. 시청률은 20%를 훌쩍 넘기며 대박을 터뜨렸다. 북오프 매장 직원은 "요즘 국민들의 정서와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 '체인지'의 진열 위치를 다시 앞쪽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기성 정치에 실망한 소비자가 많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얘기다.
국회의원이 '공중부양'하는 진풍경까지 목도한 한국 기자 입장에서도 요즘 일본 정치는 난장판이다. 야당 정치인들은 간신히 매달려 있는 총리를 떨어뜨리려고 나무 밑동을 자르고 있고,총리는 어떻게든 오래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당 의원들마저도 '어서 내려오시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전후 최악의 재앙을 맞았다는 나라의 정치인들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모습이다.
일본 언론들은 이미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없다 치고,'차기 주자' 물색에 열중이다. 요미우리신문이 한발 앞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다음 총리는 누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득표율 1위는 마에하라 세이지 전 외상(前原誠司 · 49)이 차지했다. 아사히신문의 조사에서도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마에하라 전 외상이 다른 후보군과 차별화되는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젊다. 이번 조사에서 2위에 오른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枝野幸男 · 47)과 더불어 '40대 신예그룹'의 선두 주자다.
두 번째는 '깨끗하다'는 인상이다. 마에하라 전 외상은 올초 재일동포의 정치헌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외상 자리에서 사임했다. 정치권에서는 '한물 갔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국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마에하라가 받은 정치헌금이 5년간 25만엔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오히려 '깨끗한 정치인'으로 분류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당시 "단돈 25만엔을 받고 옷 벗는 정치인이 과연 일본에 몇 명이나 있을까"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정치 이력서'도 기존 정치인과 다르다. 일본 정치인들의 프로필에는 대부분 '족보'가 언급된다. 할아버지는 총리를 지냈고,아버지는 대신으로 활동했고….그만큼 일본 정치는 '세습'의 경향이 강하다. 마에하라 전 외상은 정치와 상관이 없는 집안 출신이다. 부친마저 일찍 돌아가셨다. 생계가 어려울 정도로 힘든 시절을 보냈다.
기무라의 '체인지'가 방영되고 나서 바로 그 다음해인 2009년.민주당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일본 자민당의 '55년 체제'를 무너뜨렸다. 연예주간지에서는 '기무라 이펙트'라는 얘기가 나왔다. 일본 국민들은 지금 또 다시 드라마 '체인지'에 빠져들고 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