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단위 지역을 보다 큰 단위로 묶는 지역 경제 거점 전략이 주목을 받고 있다. 국가 단위로 움직일 때보다 훨씬 유연하면서도 동시에 '규모의 경제'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선진국들의 지역경제 전략도 이 같은 로드맵을 따라가고 있다. 영국은 42개 카운티를 9개 광역경제권으로,일본은 47개 도 · 도 · 부 · 현(都 · 道 · 府 · 縣)을 8개 광역지방계획권역으로,프랑스는 22개 레종을 6개 광역권으로 재편했다.

한국도 '광역경제권 선도산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국을 5개의 광역경제권으로 나누고 1~2개 선도산업을 대표산업으로 육성한다는 것이 골자다.

한국경제신문은 광역경제권 선도산업 성과와 과제를 중간 점검하기 위해 지난 3일 서울 중림동 본사에서 '광역선도산업 및 지역발전정책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향후 2단계 추진 방향'을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안현실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회에는 김경원 지식경제부 산업경제실장,김균섭 신성솔라에너지 대표,이명철 포스코파워 전무,황평 영남대 기계공학과 교수,양세인 OCI 부사장 등이 참석했다.

▼사회=지역경제 활성화는 MB정부의 중요 국정과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후 지역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됐나.

▼양 부사장=기업의 80%가 중소기업인 호남권에선 아직 금융위기 이후 회복세를 체감하기 힘들다. 이는 호남권 내에 기업 간 밸류체인(value chain · 가치사슬)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군산,새만금 등에 공장이 있는 OCI는 태양광 원재료 업체인 관련 분야에서 세계 1위 기업이다. 하지만 잉곳,웨이퍼,셀,모듈 등 밸류체인에 해당하는 연관 기업들은 호남권 내에 체계적으로 구성돼 있지 않다. OCI가 잘된다고 하더라도 지역경제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사회=해외판로,자금조달,인력확보 등에서도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

▼김 대표=생산인력 확보가 가장 어렵다. 생산직으로 3~4개월 버티는 젊은이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사실 일하는 공장이 지방에 있으면 저녁에 별로 할 것이 없다. 놀 공간도,사람을 사귈 기회도 부족하다. 지방기업이 인력을 구하기가 힘든 것이 그 때문이다. 공장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생산직 젊은이들이 생활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줘야 한다. 기업이 돌아가야 투자가 일어나고 고용을 창출하는데,산업이전만으로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 전무=포스코는 대기업이지만 공장이 포항,광양 등에 있으니 젊은 인력들이 서울로 옮기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연구 · 개발(R&D)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아예 기술인력은 입사한 뒤 3년간 의무적으로 지방 제철소에서 근무한 다음 서울로 오는 강제규정을 만들었다. 해결책으로 기업에서 은퇴한 R&D 인력을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 문제는 이 부분에서 지자체가 나서줘야 한다는 점이다. 젊은 인력 구하기도 힘이 모자라는데 은퇴 인력까지 확보하려니 힘들다. 지자체가 은퇴 인력을 모아 풀을 만들고 이들과 기업을 연결시켜주는 매칭 프로그램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황 교수=그래도 다행인 점은 최근 학생들이 지방 중소기업으로도 눈을 돌리고 있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오히려 지방 소재 기업들이 쓸 만한 인재를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각 광역경제권 안에 소재한 대학들이 가까이 있는 기업의 특성에 맞는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

▼김 실장=그래서 정부가 추진하는 것이 QWL(quality of working life) 밸리 조성이다. 현재 산업단지는 시설이 낡고 여가 생활을 즐길 만한 공간이 없다. QWL 사업엔 보육시설 확충부터 도로정비,산학융합형 교육시스템 구축 등이 포함돼 있다. 일하고 싶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산단 내에 영화관,도서관을 짓고 학계와 연계해 여가시간에 학위를 딸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다. 2013년까지 4개 산업단지(남동,반월 · 시화,구미,익산)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총 1조3700억원을 투입해 4개 단지에 민자,지자체 사업을 포함한 총 30개 세부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사회=그밖에 광역경제권 내 중소기업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양 부사장=광역경제권 선도산업 중엔 정부의 R&D 예산을 주관하는 기업을 선정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대기업을 주관기관으로 선정한 경우엔 연관된 소재,장비를 생산하는 중소기업도 함께 묶어서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에도 일자리가 생긴다. 중소기업을 주관기관으로 정할 경우엔 대기업보다는 장기간 지원해야 한다. 중소기업은 R&D를 상용화시킬 때까지 상당 기간이 걸린다. 3년 만에 상업화하기가 힘들다. 진짜 열심히 하는 중소기업이라면 3년 안에 겨우 파일럿 제품(시험 제품)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김 대표=양 부사장의 말대로 단순히 기업 하나를 지방에 옮겨놓기보다 한 업종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해야한다. 충북 지역엔 우리 회사를 포함해 한국의 솔라셀 밸리가 구성됐다. 태양광 사업에 들어올 신입인력에 대한 교육부터 연관 기업 유치,연구인력 모집 등에 이르기까지 기업 생태계 모든 주기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이 전무=지자체가 기업과 주민 사이의 가교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실제 사업하면서 지방에 공장을 짓는다고 하면 지역주민들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가 있다. 지역주민과 대화하고 설득하는 것은 기업의 몫이지만 지자체가 자리를 마련해주는 중재자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사회=광역경제권도 넓은 의미의 칸막이 행정일 수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김 실장=최근 대구와 광주가 3차원 입체영상(3D)융합산업,전기자동차,의료,신재생에너지 등 4개 분야에 대한 협력 방안을 구체화하는 전략적 제휴를 잇따라 맺고 있다. 대구의 옛 명칭인 '달구벌'과 광주 '빛고을'의 앞 글자를 딴 '달빛동맹'이란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광역경제권을 뛰어넘는 경제벨트가 형성되는 것이 진화의 방향이다.

사회=안현실 논설위원 / 정리=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