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정유업계의 가격담합에 칼을 빼들었다.

26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독일의 담합규제국은 영국의 BP를 비롯해 엑슨모빌 로열더치셸 코노코필립스 토탈 등 5곳의 글로벌 정유사를 가격담합 혐의로 고발했다. 이들 정유사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65%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독일 당국이 정유사를 고발한 것은 최근 유럽 내 기름값이 원유 가격 하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달 들어 국제유가는 배럴당 10달러 넘게 떨어졌지만 최근 영국에 있는 주유소에서 휘발유값은 ℓ당 0.5펜스(100펜스=1파운드) 내리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원유 가격 변동분이 주유소 기름값에 제대로 반영됐다면 가격 인하폭이 약 4펜스는 돼야 한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영국 자동차협회(AA)는 독일 당국의 정유사 고발을 환영했다. 루크 보스데트 AA 대변인은 "국제 원유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2008년보다 약 20% 낮은데도 주유소에서 기름을 사려면 그때와 비슷한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유사들은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BP 대변인은 "독일 당국은 독일 내 주유소의 절반 수준인 1만5000여곳의 가격만을 검토하고 정유사를 고발했다"며 "일부 정유사의 가격담합으로는 전체 시장에서 유가를 움직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기름값 담합 의혹은 세계 각국에서 제기되고 있다. AA는 최근 유럽연합(EU)에 석유 시장에서 유가가 조작됐는지 조사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는 로열더치셸이 유가 급등으로 인해 지난 1분기 순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0% 증가한 41억파운드(7조3300억원)를 기록한 것과 맞물려 나왔다. 세계 최대 석유사인 미국의 엑슨모빌도 지난 1분기 순익이 70% 증가한 106억달러(11조3700억원)에 달했다.

미국 상품선물위원회(CFTC)는 지난 24일 석유 선물 가격을 조작해 5000만달러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3개 투자회사와 2명의 개인투자자를 뉴욕 남부지방법원에 고발했다. 앞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고유가 대응책으로 범정부 차원의 특별조사팀을 구성해 석유 시장의 투기 행위 조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