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엊그제 상장 저축은행 등의 IFRS(국제회계기준) 적용을 5년간 유예키로 결정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특정 업종을 IFRS 적용대상에서 빼준 것도 처음이지만 그것도 결산을 목전에 둔 시점의 결정이어서 당혹스럽다. 금융위는 투자자 혼란을 줄인다는 명분을 들지만 IFRS 회계를 적용하면 저축은행들의 BIS비율이 크게 떨어지고 영업정지가 불가피하며 결국 뱅크런이 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란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물론 당국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당국이 지금껏 뭘하다가 이제 와서 터무니없는 기준 변경을 들고 나왔는가 하는 점이다. IFRS를 우리가 선도적으로 도입한다고 떠벌릴 때는 언제고 지금에 와서 이 나라도 연기하고 있고 저 나라는 업종별 기준을 달리 적용하고 있으니 우리도 한다는 식의 설명을 내놓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이다. 그동안 저축은행의 IFRS 충격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요,IFRS만 유예하면 뱅크런이 없을 것으로 믿는다면 정말 어리석은 발상이다. 무려 5년간 유예하는 것도 그렇다. 건설경기가 살아날 때까지 분식회계를 해도 좋다는 어처구니없는 면허장이다.

저축은행에 대한 불신의 본질은 못 믿겠다는 것이다. 저축은행의 PF 대출 연체율은 평균 25%이고,심지어 30~40%에 달하는 곳도 있다. 전체 대출 중 고정(6개월 이상 연체) 이하 비율은 10.6%에 이른다. 이것도 작년 말 통계일 뿐,지금은 얼마인지 알 수도 없다. 충당금을 실제 대손율보다 적게 쌓았으니 장부상 손실이 적게 잡히고 BIS 비율은 멀쩡한 척하고 있을 뿐이다.

금융위는 '투자자 혼란'을 우려했지만 이것이 왜 IFRS 탓인가. 저축은행 회계장부와 BIS비율을 믿을 수 없다는 게 진짜 이유다. 금융위는 IFRS 적용시 저축은행 BIS비율이 1.0~1.5% 떨어진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영업정지된 부산저축은행은 작년 6월 8%대이던 BIS비율이 실사 후엔 -50%로 추락했다. 언제 어디서 분식 · 불법 · 비리가 터질지 모르기에 불안한 것이다. 이 짓을 정부가 허가하겠다니 정말 기겁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