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삼성·LG 전자戰과 스포츠맨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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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속 상대 배려할 때 관객 박수
위기 공동대처…상생 돌파구 찾길
위기 공동대처…상생 돌파구 찾길
최근 상승세인 LG팀은 SK에서 전입한 꽃신참 박현준이 투수 다승부문 1위에 등극했고 이병규,박용택,조인성이 타율부문 최고 성적을 휩쓸면서 지난해 부진을 떨치고 팀 성적 2위로 올라섰다. 휴대폰을 비롯한 전자사업 전반의 가라앉은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LG그룹의 질주가 야구팀 상승기류와 궤도를 같이할지 관심거리다.
삼성과 LG의 전자제품 경쟁은 국제적으로도 잘 알려진 숙명의 라이벌전(戰)이다. 전자업은 1959년에 국내 최초로 라디오를 제조하면서 LG가 먼저 시작했다. 삼성이 1969년에 일본 산요와 합작으로 전자업 진출을 시도하자 LG가 반대운동을 펼침으로써 껄끄러운 관계가 시작됐다. 1990년대에는 육각수를 앞세운 냉장고전이 벌어졌고 2000년대에는 은나노 기술을 내세운 세탁기전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TV와 휴대폰 경쟁은 날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최근에는 3D TV 출시에 맞춰 기술력과 마케팅의 전면전이 벌어지고 있다. '은근히 폄하하기'와 '말꼬리 잡기'가 무기인 진흙탕 싸움이다. 전자제품은 공학적 기술에 바탕을 두고 있어 아무리 마케팅 기법과 홍보전략을 동원해 치장하더라도 기술 우위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양측 모두 상대방의 기술적 우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소비자가 혼란을 겪고 있다.
스포츠 정신의 요체는 치열하게 경쟁하고 결과에 따라 승자에게는 축하를,패자에게는 격려를 보내는 것이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최고의 쾌거는 스피드 스케이팅에서의 금메달 잔치였다.
특히 이승훈 선수의 국제대회 1만m 첫 출전 금메달은 이변에 가까웠다. 더 큰 감동은 시상대에서 일어났다. 이승훈 선수보다 12살이나 많은 동메달리스트 밥 데용 선수(네덜란드)가 은메달을 따낸 러시아 선수와 힘을 모아 어린 금메달리스트를 목마 태워 들어 올린 것이다. 백전노장인 밥 데용 선수의 너그러운 스포츠맨십은 2011년 종목별 세계선수권에서 이승훈 선수를 제치고 금메달 두 개를 차지함으로써 더욱 빛났다.
밥 데용 선수와 같은 성씨를 가진 잊지 못할 네덜란드인이 또 있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황제의 명을 받고 파견된 이준 열사 일행을 끝까지 도와준 사람이 바로 데용이다. 당시 일본은 군함을 동원해 대규모 대표단을 파견하고 만찬장 스폰서로도 나서는 위세였으나 우리 대표단 행색은 초라했다.
조그만 호텔을 운영하던 데용은 우리 대표단에 숙식을 제공하고 이준 열사가 순국하자 장례를 치르고 기자를 불러 모아 지역신문에 보도되도록 도왔다. 데용호텔은 한국인이 인수해 지금은 이준열사 기념관으로 쓰고 있다. 세대를 초월한 두 사람의 데용은 자신의 패배를 삭이면서도 승자를 축하하고 어려움에 처한 약자는 성심껏 돕는 선(善)의 표상이다.
삼성과 LG의 전자전은 자동차와는 대조적으로 대기업 경쟁구도를 통해 국내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국제시장에서도 삼성과 LG 브랜드는 한국 국적을 매개로 상승효과를 얻고 있다. 국내시장보다는 70억 인구의 세계시장을 겨냥해 상대방이 기술적 곤경에 놓일 경우에는 적절한 조건으로 도움을 주고 반도체와 같이 일방에서만 생산하는 부품은 수급공조로 협력해야 한다.
가격담합은 공정거래법상 처벌대상 범죄 행위지만 기술협력은 소비자에게 도움을 주는 정당한 경제 행위다. 삼성과 LG가 기술적 위기에는 공동 대처하고 막대한 재원(財源)과 위험을 수반하는 차세대 대형 사업에는 전략적 파트너로 협력하는 상생적 경쟁관계를 이끌어 나가기를 기대한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