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금융위원회의 월요 간부회의 분위기는 평소와는 달랐다고 한다. 김석동 위원장은 론스타의 수시 적격성 문제,우리금융지주의 매각 재추진 방안 등 밀린 현안들을 언급하며 "내가 취임한 게 언제인가. 각자 맡은 현안을 잘 챙겨보라고 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검토만 하는 것인가"라며 국장급 간부들을 다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그날 분위기는 부하들을 다독여주는 그의 평소 스타일과 달리 아주 싸늘했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이후 금융당국은 밀린 '숙제' 처리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금융위는 사흘 뒤인 12일 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의 대주주 수시 적격성 판단과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자회사 편입 승인 심사를 사실상 무기 연기하는 '결단(?)'을 내렸다. 수년째 질질 끌어온 론스타 이슈를 매듭지으려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시각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는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시장에선 "당국이 금융산업 발전 보다는 보신주의적인 결론을 내렸다"는 혹평이 적지 않다.

금융당국은 최근 더 맹렬한 기세로 현안을 해치우고 있다. 17일엔 지난해 한 차례 매각이 무산됐던 우리금융지주 매각 방안을 내놨다. 우리은행 우리투자증권 경남은행 광주은행 등 10개 자회사를 거느린 우리금융을 통째로 팔기로 한 것.최소 입찰 지분 규모는 입찰참가의향서(LOI) 접수 단계부터 30%로 설정했다. 김 위원장이 "산은지주는 인수희망자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는데도,금융계에선 '산은지주를 위한 재매각 방안'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 분위기다. 이날 밤엔 금융감독원이 현대캐피탈 해킹 사고 중간 검사결과를 담은 보도자료를 이례적으로 배포하기도 했다.

이런 '속도전'을 두고 일각에선 '국면전환용'이라는 말도 들린다. 어쨌건 최근 저축은행 사태로 국민적 비판에 직면한 금융당국이 일하는 모습을 되찾은 건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당국자라면 지금의 결정이 훗날 어떻게 평가받을지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금융산업의 전체적인 발전을 염두에 둔 정책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도 유념했으면 좋겠다.

류시훈 경제부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