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과 대규모 재정적자 문제로 고전 중인 유럽의 경제 약체 국가(이탈리아) 출신이 유럽대륙의 통화정책을 좌우하게 됐다. "(월스트리트저널) "검약과 물가 안정을 중시하는 독일적 미덕을 지닌 이탈리아인이다. "(한델스블라트)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63 · 사진)가 차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로 결정되자 외신들이 내린 평가다. 유럽연합(EU) 재무장관들은 1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의를 갖고 차기 ECB 총재로 드라기를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장클로드 융커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은 "EU 재무장관들이 만장일치로 드라기 총재를 장클로드 트리셰 현 ECB 총재의 후임으로 지명했다"고 설명했다.

◆유럽 재무장관 만장일치 지지

유럽 재무장관들의 이날 지명으로 드라기 총재는 공식적인 승인 절차를 밟게 됐다. 6월 유럽의회 표결을 거쳐 7월 회원국들의 최종 확인 절차를 거치면 10월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트리셰 총재의 뒤를 이어 유럽의 '경제 대통령' 역할을 맡게 된다.

앞서 드라기 총재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양대 축인 독일과 프랑스의 지지를 얻으면서 차기 ECB 수장으로 사실상 낙점된 상태였다. 당초 가장 유력한 ECB 총재 후보였던 악셀 베버 독일 분데스방크 총재가 올초 ECB 총재직 불출마를 선언한 뒤 급부상했다. "ECB 이사회에서 이탈리아 출신 비중이 높아져 세력 균형이 무너진다"는 유럽 소국들의 견제도 있었지만 유럽 재정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선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며 차기 ECB 리더로 확정됐다.

◆골드만삭스 출신 '인플레 파이터'

드라기 차기 ECB 총재는 미국에서 공부한 경제학자 출신이다. 로마 사피엔차대를 졸업한 뒤 미국 MIT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랑코 모딜리아니와 로버트 솔로 교수 지도하에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MIT 2년 후배인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는 이때 인연을 맺었다. 드라기와 MIT 동창인 올리비에 블랑샤르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도회적이고 세련됐으며 무엇보다 사실(팩트)에 초점을 맞추던 인물"로 학창 시절 드라기를 회상했다.

이탈리아 피렌체대와 세계은행을 거쳐 1990년 이탈리아 재무부 국장에 취임한 드라기는 이탈리아 경제의 10%를 담당하던 통신,에너지,금융 부문 민영화를 주도하며 '슈퍼 마리오'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어 2002년에는 골드만삭스 국제담당 부회장으로 스카우트되며 글로벌 금융계에 막강한 인맥을 구축했다. 2005년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에 오른 드라기는 주요 20개국(G20) 산하 금융안정화포럼(FSF) 의장을 겸임하며 글로벌 금융안전망 확충에도 주력했다. 지난해 그리스 재정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면 ECB 자체도 위험에 빠질 수 있다"며 독일 등 주요국을 설득하는 등 그리스 구제금융을 주도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드라기는 인플레이션에 강력히 대처할 인물로 비쳐진다. 지난달 ECB가 23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올릴 때는 모국인 이탈리아 경제에 미치는 타격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대처가 우선"이라며 금리 인상을 이끌었다. 한델스블라트는 "인플레와의 싸움을 주도한 통화정책의 매파"라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드라기가 ECB에 유연함과 터프함을 동시에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