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저축은행의 대규모 대출 과정에서 여신심사 전에 이미 관련 서류에 사전 허가를 뜻하는 가(可) 표시가 돼있었고,대출을 심사하는 여신심사위원회도 미리 가부 여부가 표시된 서류에 결재만 하는 거수기 노릇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관계자는 "여신심사위원회는 사실상 거의 개최되지 않는 '식물 위원회'였다"고 전했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그룹이 이와 같은 수법으로 향후 사업성이 불확실한 서류상의 회사에 약 4조6000억원의 대출을 해준 이유가 비자금 조성 및 횡령이었다고 보고 이 부분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검찰은 특히 이 그룹이 전남 신안군 개발사업에 들어간 특수목적회사(SPC) 9곳에 약 3000억원의 불법대출을 해주면서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신안군 복합리조트 개발에 참여한 SPC 신안월드 관계자가 '부동산 매입자금 외 비자금 2억원이 필요하다'는 보고를 올린 점에 주목하며 그룹 대주주 임원진들이 이를 직접 지시했는지 여부를 파악하는 한편,사업 인 · 허가를 위해 정 · 관계에 로비를 벌였는지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검찰은 신안월드가 수협이 소유한 부동산을 매입하면서 수협 관계자에게 편의를 봐달라는 명목으로 1억7000여만원의 뇌물을 건넨 정황을 밝혀냈다.

검찰은 또 그룹이 대주주 소유 SPC 세 곳을 통해 경기 시흥 영각사 납골당 사업에 대출해준 약 830억원을 회수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도 횡령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상태다. 해당 납골당 사업은 현재 중단된 상태로,그룹은 납골당 사업 수익의 일부를 직접 받아가기로 계약하고 금융자문수수료 명목으로 170여억원의 뒷돈을 받아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D해운업체에 선박구입 자금 명목으로 약 4000억원을 대출해주고 일부를 돌려받아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도 들여다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검찰과 금융당국은 이 그룹 대주주 경영진들이 '묻지마 대출'을 해주고 일부를 빼돌리거나 자문수수료 형식으로 돈을 받는 수법으로 은닉한 돈을 전액 환수할 예정이다. 일단 예금보험공사는 이날 부산저축은행그룹 5개 계열 저축은행과 보해 · 도민저축은행 대주주 및 임원 73명의 금융자산 90억원 및 부동산 437필지에 대한 가압류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또한 부산저축은행그룹의 SPC에 은닉재산이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대출약정서류 등을 조사하고 있으며,책임자들이 국내외로 빼돌린 재산에 대해 환수 조치하겠다고 예보 측은 덧붙였다.

이고운/조재길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