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외교당국자는 최근 "북한이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도발에 대해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사과라는 표현을 구체적으로 해야 하느냐는 질문엔 "국민들 중 누가 보더라도 사과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된다"고 규정했다. 딱 부러지게 사과를 하지 않아도 그런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정도면 된다는 모호한 답변이었다.

그렇지만 독일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명시적인 사과가 대화의 전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 9일 베를린에서 가진 동포간담회에서 "북한에 대해 반드시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잘못을 인정해야 똑같은 잘못을 안 한다"고 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북한이 테러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내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2차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초청하며 이런 전제 조건을 단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북한의 사과는 남북간 핵문제를 포함한 모든 대화의 대전제라는 원칙이 남아 있다"고 했다.

이번뿐만 아니다. 지난해 3월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대북 정책의 강경론과 온건론이 수시로 바뀌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5월24일 담화에서 "북한은 대한민국과 국제사회 앞에 사과하라"며 천안함 사건 관련자들의 즉각적인 처벌을 요구했다. 청와대 참모들은 북한의 사과가 있어야 대화가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그렇지만 그 이후 한동안 사과 요구는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9일 언론 인터뷰에서 '천안함 사과가 6자회담의 전제조건이냐'는 질문에 "국제사회의 모든 문제는 어떤 하나를 놓고 그거냐 저거냐 가를 수 있는 건 아니다"며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2주 후 연평도 포격 사태가 터지자 "지금은 6자회담을 거론할 시기가 아니다. 북한 스스로 모험주의와 핵을 포기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고 했다. 그렇지만 지난 연말 외교통상부 업무보고에선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 폐기를 반드시 이뤄야 한다"며 대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독일 통일을 이뤄낸 주역들이 우리 정부에 "분명한 통일 외교의 목표와 함께 전략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 것은 시의적절한 것 같다.

홍영식 프랑크푸르트/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