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점 숫자야말로 은행의 경쟁력과 힘을 보여주는 잣대입니다. "(A은행 관계자)

'현장 리포트,2011년 대한민국 금융지도' 취재를 위해 최근 기자는 주요 은행 홍보팀에 일일이 연락했다. 전국에 위치한 은행별 지점 숫자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은행 관계자들은 이 요청에 한결같이 난색을 표했다. 은행 지점 수가 외부로 공개될 경우 경쟁 은행들과의 비교가 우려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들은 "다른 은행과의 지점 수를 비교하는 기사라면 자료를 절대 줄 수 없다"고 말했다. 한발 더 나아가 "이런 주제로는 기사를 내보내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은행의 지점 개수는 보안 자료가 아니다. 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은행별 지점주소가 모두 검색 가능하다. 개별 은행 홈페이지에서도 지점 검색은 가능하다.

이처럼 외부에 공개된 자료인데도 은행들이 언급을 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도 지점 숫자를 은행의 경쟁력과 '사업 역량'을 나타내는 최대 주요 지표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게 은행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러니 경쟁 은행에 비해 지점이 적다는 사실은 무조건 감추고 싶어하는 것이다. 은행이 아직도 '외형 경쟁'에 매달린다는 얘기가 된다.

은행들은 최근 뭉칫돈이 도는 서울 강남 등지에서 경쟁적으로 지점을 늘렸다. 공세적인 경영 자체는 탓할 일이 아닐 수 있지만,일부 은행이 최근 경쟁 은행의 고객을 얼마나 유치해 오는지를 직원 업무 평가에 반영한다는 얘기까지 나돌면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지점 수를 늘리고 대출 규모를 확대하는 등 외형적 성장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이는 자칫 전체 은행권의 자산 부실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쇄 부도사태에 직면한 저축은행들도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에 경쟁적으로 나선 게 부실화의 큰 원인이었다. 시중은행과 저축은행을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겠지만,내실 키우기를 외면한 채 양적 경쟁에만 매달린 결과가 어떤지 확인된 셈이다. 외형에만 치중하다 외환위기 때 집단퇴출까지 경험한 은행들이다. 이제 지점 숫자 경쟁에선 벗어날 때가 된 것 아닐까.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