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저축은행그룹 대주주 경영진이 박연호 그룹 회장(사진)과 친분이 있는 금융감독원 간부를 감사로 '지명'해 영입한 사실이 6일 밝혀졌다. 박 회장 등은 또 고액연봉 등으로 금감원 출신 감사들을 '회유'해 불법행위에 가담시킨 정황도 확인됐다.

6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검사장 김홍일)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그룹은 박 회장의 고등학교 선배인 전 금감원 국장 문모씨(63)를 부산2저축은행 감사로 영입하겠다며 금감원 측에 먼저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 회장과 광주광역시의 명문 K고교 2년 선후배 사이인 문씨는 부산2저축은행 감사로 재직하면서 박 회장 등이 실질적 소유자인 특수목적회사(SPC)에 8514억원을 불법대출하고 부산2저축은행을 위해 8336억원 회계분식하는 데 가담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검찰 관계자는 "문씨의 경우 박 회장의 지인이라는 점 때문에 부산저축은행그룹 차원에서 금감원에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금감원의 감사추천제를 이용한 경우"라고 말했다.

통상 저축은행의 경우 금감원은 50대 중반의 2급 부국장이나 2급 팀장급에 산하 금융회사 감사나 이사로 내려가도록 보이지 않게 압박을 가하거나 해당 금융회사와 협의한다. 이때 금융회사들는 "자리가 비었다"며 유능한 인물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지만 문씨의 경우처럼 특수관계인을 찍어서 보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금감원 입장에서는 인사적체 해소 등을 감안,특수관계인 여부는 사실상 따지지 않는데 이것이 이번 저축은행사태에서 무시못할 원인이 된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통상 해당 금융회사가 특정 인물을 요청하는 경우는 금융회사 관계자들의 지인을 감사로 앉히려는 게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문씨는 부산저축은행그룹의 금감원 출신 감사 4명 중 가장 적극적으로 불법행위에 참여한 혐의로 유일하게 구속기소된 상태다.

부산저축은행그룹의 또다른 금감원 출신 감사 3명의 경우 일단 그룹에 영입된 뒤 고액연봉 등으로 대주주 경영진에 회유당해 문씨처럼 불법행위에 적극 나섰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그룹이 전반적으로 '모럴 해저드'에 빠진 상태에서 감사 혼자 직분에 충실하기 힘든 분위기였다"면서 "연봉도 많이 받았으니 불법행위에 가담하라는 대주주 경영진의 지시를 뿌리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산지검 특수부 검사 3명과 수사관 3명을 영입해 수사진을 보강한 대검 중수부는 다음주부터 금감원 직원들을 '줄소환'할 방침이다. 검찰은 금감원 직원들이 검사를 하고도 부산저축은행그룹의 불법대출 정황을 밝혀내지 않은 이유를 집중 추궁할 방침이다. 검찰은 부산 현지에서 영업정지 전날 영업마감 후 특혜인출을 한 예금주들을 불러 조사를 벌인 결과 금감원 직원들과 저축은행의 유착관계를 상당 부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업정지된 보해저축은행을 수사하고 있는 광주지검 역시 금감원 전 · 현직 임직원들이 저축은행 측에서 뇌물을 받고 편의를 봐준 정황을 잡고 본격 수사에 나섰다.

지금까지 광주지검은 2009년 보해저축은행 대표에게서 수억원을 받고 검사 과정에서 드러난 잘못을 눈 감아 준 혐의로 전 금감원 부국장 이모씨를 지명수배하고,4000만원을 받은 금감원 2급 조사역 정모씨를 구속했다. 광주지검 측은 "정씨와 이씨 외에도 금감원 직원들이 보해저축은행과 유착관계였다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어 확인하는 단계"라며 "지명수배 중인 이씨는 현재 휴대폰을 끄고 잠적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