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는 뛰어난 간호사다. 응급 구호에 관한 한 웬만한 레지던트 저리가라다. 어느 날 길에서 자동차 추돌 사고로 다친 환자를 본 즉시 가슴에 찬 공기(기흉)를 빼내는 응급 처치를 한 뒤 병원으로 이송,다음 조치를 일러준다. 그러나 의사는 그런 지시를 누가 했느냐고 따지고 '내가 했다'는 그에게 "넌 간호사야.지시는 내가 해"라고 내뱉는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환자 약혼녀 또한 "의사도 아닌 간호사 주제에"라며 환자에게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고소하겠다고 난리친다. 뿐이랴.성격 고약한 할머니 환자는 입원실에 들어선 신참 간호사 클로이에게 음료수 캔을 던지며 "하는 일이 뭐냐"고 소리친다. 미국 드라마 '머시' 속 간호사의 일상이다.

국내 사정은 더 어렵다. 한 달이면 열흘 밤샘 근무에 한 사람당 환자 수 또한 미국의 3배인 평균 16명에 이른다는 까닭이다. 3D도 아닌 4D(dirty,difficult,dangerous,dreamless) 직업이란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닌 셈이다. 지방과 소규모 병원은 물론 대형 병원에서도 연평균 15%가 떠난다고 할 정도다.

이대로 가면 2025년엔 최대 2만9300여명의 간호사가 부족할 것이란 보고서도 나왔다(보건사회연구원).고령화 사회에 따른 수요는 늘어나는데 절대 인원이 적은데다 자격증을 갖고도 일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 그렇다는 것이다.

간호사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10년 후 직업 전망치'의 '고용 현황' 부문 1위를 차지했다. 힘들긴 하지만 취업 가능성으로 보면 단연 앞서는 셈이다. 국내 수요만 많은 것도 아니다. 미국 역시 2020년까지 100만명 이상 모자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960년부터 1976년까지 독일에 파견된 국내 간호사는 1만1057명.1965~75년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국내 송금액은 연평균 1000만달러가 넘었고,1965~67년엔 총수출액 대비 1.6~1.9%에 달했다고 한다. 서양화가 노은님 씨(함부르크 국립조형예술대 교수)처럼 간호사로 갔다 분야를 바꿔 성공한 사람도 적지 않다.

간호사의 경우 동화 속 '백의의 천사'와 차이가 있다 해도 전문성으로 승부할 수 있는 직업임에 틀림없다. 고령화사회를 넘어 고령사회로 갈수록 수요가 증가할 것 또한 분명하다. 인력이 달리다 보면 처우와 근무조건도 개선될 수밖에 없을 테고.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