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술품이 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아요. 미국의 카지노 재벌인 스티브 윈은 렘브란트,고흐,피카소,모네 등 세계적인 화가들의 작품을 호텔에 전시해 큰 홍보효과를 누렸죠.단순히 자산을 보유하는 의미에서의 투자가 아니라 미술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죠."(정우현 미스터피자 회장)

서울 방배동 신사옥의 복합문화공간 '미피하우스'를 개관한 정우현 미스터피자 회장(62)과 신사옥 아트컨설팅 업무를 총괄한 이옥경 가나아트갤러리 대표(50)가 만났다. 두 사람은 신사옥 건물 구조와 인테리어 계획 단계부터 미술품을 설치하기까지 협업하며 새로운 '아트 마케팅' 모델을 제시했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컬렉터와 화상 사이로 인연을 맺어왔다.

두 사람은 "평범한 회사가 일류 기업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에도 그림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경영 현장에서도 '아트 마케팅'의 발걸음은 멈출 줄 몰랐다"고 말했다.

사랑을 전도하는 최고경영자(CLO)라고 자신을 소개한 정 회장은 이 대표와 자연스럽게 미술품과 관련된 기업 일화와 그 속에 깃든 경제 논리를 주고받으면서 얘기를 이어갔다.

이 대표가 "기업들이 상품보다 그 속에 담긴 문화를 파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며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가 얼마 전 뉴욕 사옥에 유명 조각가의 플레밍(페니실린 발명가) 상을 설치한 이유도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진 회사라는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자 정 회장은 "세계 1등 기업으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고객 차별화가 필요한데 미술이 효과적"이라고 답했다.

이 대표는 "기업과 미술은 한 뿌리에서 뻗어나간 다른 가지가 아닐까 생각된다"며 "두 분야가 얼핏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와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미술 사이에는 '행복'이라는 연결고리가 있다"고 했다. "기업이 미술을 홍보에 활용하면 품격과 사회 기여도를 높이면서 실속도 차릴 수 있거든요. 비싼 현대미술은 가격이 올라 웬만한 개인은 수집할 엄두를 못 내요. 그런 측면에서는 기업하는 사람들이 유리하지요. "

정 회장은 "예술이란 일상에서 소비되고 향유돼야 한다는 철학을 평소 갖고 있었다"며 복합문화공간 '미피하우스'의 사례를 소개했다. "올해부터 아예 미술품 구입비로 매년 10억원을 책정했습니다. 지하층에 자리잡은 다목적 공연장 인송홀과 커피숍을 겸한 마노핀갤러리를 국내외 인기 작품 100여점으로 꾸몄어요. "

중국 작가 리진의 아트 피아노가 놓인 인송홀 벽면에는 금중기 씨의 개구리 조각이 걸려 있다.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마노핀갤러리에는 김흥수 최종태 이대원 박항률 씨 등 국내 작가와 요시토모 나라,구사마 야요이,요셉 보이스 등 외국 작가들의 소품이 배치돼 있다. 건물 로비와 매장 입구에는 키스 해링의 작품이 있고,식당 입구인 2층 복도 벽면엔 김신일 씨의 영상 작품이 상영되고 있다.

이 대표는 "국내 미술시장에서는 개인 구매자가 90%를 차지하지만 미술이 발전하려면 기업과 정부기관의 적극적인 컬렉션이 필요하다"며 "스위스 금융그룹 UBS의 소장품이 3만5000여점인데 우리나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 6600여점인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규모"라고 말했다.

정 회장도 동조하며 "펩시코는 뉴욕 본사 야외 조각공원에 자코메티,칼더,헨리 무어 등 20세기 조각가들의 작품 45점을 설치해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있는데 참으로 부럽다"고 맞장구를 쳤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