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이 29일 북한에 대한 긴급 식량지원을 개시하게 된 데는 악화되는 식량 상황에 다급해진 북한이 방침을 바꿔 국제기구의 모니터링 요구를 수용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WFP는 이날 북한에서 굶주림으로 고통당하는 350만 명에 대한 긴급 식량지원 활동을 개시한다고 밝히고, 지원된 식량이 취약계층에게 정확하게 전달되는지를 수시로 점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년 동안 지원될 식량의 규모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2억 달러가 넘는다.

WFP는 춘궁기인 5월부터 7월 사이에 어린이와 여성, 노인 등 취약계층에 식량을 공급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오는 10월 추수가 끝난 뒤에도 지원이 필요한 그룹을 선정해 영양상태 개선에 도움이 되는 물품을 지원할 방침이다.

공급될 식량은 필수 곡물과 함께 옥수수와 콩, 쌀을 섞어 만든 우유, 다양한 영양소가 풍부한 비스킷 등이다.

특히 WFP는 북한 정부의 동의 하에 매달 한 차례씩 북한 내 400여 개 지역에 직원들을 보내 식량지원이 계획대로 적절하게 집행되고 있는지를 점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WFP는 모니터링 대상 지역을 하루 전에 북한 당국에 통보하고, 점검 작업에 나서는 직원의 20%는 한국어 구사가 가능한 인력으로 채우기로 했다.

또 농촌 지역의 장마당에서 이뤄지는 물물교환 등 식량 거래 실태도 수시 점검 대상에 포함시켰다.

WFP는 이날 성명에서 "이번 활동 과정에서 식량이 필요한 곳에 전달될 수 있도록 가장 강도 높은 모니터링과 통제가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정부가 `모니터링 불가' 방침을 철회하고, 국제기구의 투명성 보장 요구를 수용한 것은 그만큼 식량 부족이 심각한 상황임을 반증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제네바의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이 기존 방침을 바꿔 식량지원 상황에 대한 국제기구의 모니터링을 받아들인 것은 그만큼 사정이 어렵기 때문"이라며 "WFP의 긴급 지원으로 당장 급한 불은 끄겠지만, 북한 식량난의 원인은 구조적으로 워낙 복합적이고 만성화돼서 근본적인 해결책에는 전혀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WFP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유니세프(UNICEF) 등은 지난 2월 중순부터 3월 초까지 북한의 9개도, 40개군을 방문해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지난해 여름의 홍수와 겨울의 혹독한 추위, 수확량 감소 등으로 인해 600만 명이 식량부족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제네바연합뉴스) 맹찬형 특파원 mangel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