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랭킹 1위 리 웨스트우드(잉글랜드)가 한국 골프장에서 열린 공식 대회에서 첫 라운드를 했다. 28일 경기도 이천 블랙스톤GC(파72 · 길이 7312야드)에서 열린 유러피언투어 발렌타인챔피언십 1라운드.그는 다소 이른 시간인 오전 7시20분 10번홀에서 티오프를 했다.

스코틀랜드풍의 치마를 두른 진행요원이 '월드랭킹 넘버 원 골퍼,리 웨스트우드'라며 그를 소개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특유의 '카레이서 복장(후원사 로고가 덕지덕지 붙은 옷차림)'을 하고 나타난 웨스트우드는 여유있고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로 국내 팬들을 매료시켰다. 18홀을 따라다니며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했다.

◆벙커와 해저드는 장식물에 불과

대회장은 전형적인 한국형 산악코스로 평지에서 열린 해외 골프장과 큰 차이를 보였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홀이 많고 페어웨이의 언듈레이션과 '파도 그린'의 경사도 심하다. 하지만 웨스트우드에게 이런 것들은 장식물에 불과했다.

티샷이 빨랫줄처럼 날아갈 때는 갤러리들 사이에서 "야! 기막히다"라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질러쳐야 할 곳에서는 과감하고 공격적인 드라이버샷을 300야드 이상 보냈다. 18번홀(파5 · 548야드)에서는 티샷을 치고 아이언으로 '2온'을 시도했다. 아쉽게 그린 바로 앞 벙커 턱을 맞고 벙커에 떨어졌으나 환상적인 벙커샷으로 1.5m 버디찬스를 만들어 성공시켰다.

웨스트우드는 정교한 샷으로 3m 이내의 버디찬스를 자주 만들었으나 퍼팅이 뜻대로 안 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동반 플레이를 한 이안 풀터(잉글랜드),미겔 앙헬 히메네즈(스페인)와 비교하면 그의 샷은 격이 달랐다. 풀터는 1,2번홀에서 연거푸 더블보기를 하는 등 샷 난조를 보였다.

코스에서 만난 홍희선 프로는 "히메네즈는 과거 유럽 선수들이 치던 스타일의 클래식한 스윙이고 풀터는 '업 & 다운'이 심한 스윙을 갖고 있다. 하지만 웨스트우드는 최근 자리잡은 현대식 스윙을 완벽하게 소화했다"고 설명했다.

웨스트우드는 최소한 7~8개홀에서 버디를 잡아낼 수 있었다. 파5홀인 18번과 5번홀에서 '2온'이 가능했다. 파4홀 가운데 14,17번홀에서 웨지로 샷을 해 3m 이내의 버디 기회를 잡아냈고 4~6번홀에서는 3연속 버디도 가능해 보였다. 그는 이날 4,5번홀에서 연속 버디를 낚았다.

◆즐기는 골프…매너도 세계 최고

웨스트우드의 첫 티샷은 벙커로 갔다. 쌀쌀한 날씨 탓에 손이 시린데도 웨스트우드는 멀리 떨어져 있는 벙커 고무래를 집어 캐디에게 가져다주는 배려를 보였다. 14번홀에서는 티샷을 하려는 순간 갤러리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자 몸을 흔들며 웃어넘겼다. 골프를 즐기는 모습이 역력했다. 또 17번홀 그린에서 공을 집어올리던 히메네즈가 공을 떨어뜨리자 주워서 허리를 굽혀 공손한 태도로 공을 건네는 익살스런 행동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전반 9개홀을 마친 뒤에는 쓰던 공을 여성 갤러리에게 건네주는 팬서비스도 선보였다.

그러나 웨스트우드가 넘어야 할 최대의 난적은 '갤러리 트러블'이었다. 이날 휴대폰과 카메라 셔터소리 때문에 샷을 하려다 수차례 어드레스를 풀어야 했다. 3언더파로 상승세를 타던 상황에서 발목을 잡은 것도 갤러리였다. 그가 7번홀(파3)에서 티샷을 하려는 순간 뒤에서 카메라 셔터소리가 났다. 샷을 하려던 순간 동작을 멈춘 그는 다시 티샷을 했지만 오른 쪽으로 밀리며 벙커에 빠지고 말았다. 1.8m 파퍼트를 미스하며 보기를 했고 상승세가 꺾이고 말았다.

9번홀(파4)에서도 티샷에 이어 두 번째 샷마저 벙커에 박히고 말았다. 세 번째샷으로 벙커 탈출에 실패한 뒤 '4온'을 해 2.5m 보기 퍼팅을 하려는 순간 또 다시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렸다. 웨스트우드는 이 퍼팅이 들어가지 않아 더블보기를 하며 이븐파 72타로 경기를 마쳤다.

이날 선두는 다미엔 맥그레니(아일랜드)로 6언더파 66타를 쳤다. 양용은은 4오버파 76타로 하위권으로 처졌다.

이천=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