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빈이 해병대에 자원 입대한다고? K2 모델로 딱이네,딱이야."

지난 1월12일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하던 정용재 K2코리아 브랜드마케팅 팀장의 입에서 연신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두 달 넘게 고민해온 '숙제'가 드디어 풀렸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시 K2코리아는 '이미지 변신'을 위해 새로운 광고모델이 필요했던 터.등산이 전부였던 아웃도어 활동은 이미 트레킹,캠핑,자전거 등으로 확대됐는데도 많은 소비자들은 여전히 K2를 '등산 전문 브랜드'로 생각한다는 조사결과를 지난해 가을 접했기 때문이었다. 소비자들이 K2를 이렇게 인식하게 된 데는 전문 산악인을 모델로 한 기존 광고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됐다.

정 팀장은 제일기획과 함께 '광고 뜯어 고치기' 작업에 들어갔다. 광고 메시지는 K2의 의류와 신발을 착용한 채 트레킹,캠핑,바이킹 등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을 하는 것으로 잡았다. 문제는 이를 힘 있게 전달해줄 수 있는 모델을 찾는 것이었다.

'잘 나간다'는 국내 가수와 배우,스포츠 스타는 물론 해외 배우까지 후보 리스트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남성적,전문적'이란 K2의 기존 이미지를 지키면서도 여성을 비롯한 일반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는 모델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빈의 해병대 입대 소식은 이런 정 팀장의 고민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나왔다.

정 팀장은 "해병대에 자원 입대하는 현빈의 강인한 모습이 K2의 남성적인 이미지와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게다가 현빈은 드라마 '시크릿 가든' 덕분에 남녀노소 모두에게서 사랑받는 '국민배우'였던 만큼 전 연령층을 고객으로 삼는 K2의 모델이 되기에 더없이 좋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광고모델로 나서달라'는 K2코리아의 제안에 현빈은 곧바로 'OK' 사인을 보냈다. 김형신 K2코리아 브랜드마케팅팀 과장은 "당시 현빈은 쇄도하는 광고모델 제의에 자신의 이미지에 맞는 브랜드만 '골라서' 선택했던 상황이었다"며 "다행히 현빈은 '평소 아웃도어 활동을 좋아한다'며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1박2일 촬영 내내 도시락으로 때워

광고 컨셉트는 '잠시 현실을 떠나 새로운 나를 발견한다'는 것으로 정했다. 군입대를 통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려는 현빈을 보다 친근한 이미지로 변신하려는 K2코리아와 절묘하게 맞춘 것이다.

K2코리아는 1월 말 현빈과 함께 화보용 사진을 찍은 뒤 2월12일 1박2일 일정으로 TV광고 촬영에 들어갔다. 장소는 제주도.현빈이 군입대를 앞둔 탓에 해외여행이 제한됐기 때문이었다.

촬영 일정은 빡빡했다. 신창해안도로,비자림 야영장,용눈이 오름 등 제주도 곳곳을 헤집으며 촬영하느라 100여명에 달하는 스태프는 물론 현빈도 1박2일 내내 '아웃도어' 생활을 했다. 첫날엔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촬영이 계속됐다. 둘째날 스케줄도 오전 5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어졌다. 김 과장은 "현빈을 비롯한 모든 스태프들이 이틀 동안 여섯끼 식사를 모두 야외에서 도시락으로 때웠다"며 "빡빡한 스케줄 탓에 짜증이 날 법도 했지만 현빈은 전혀 불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광고는 △출발 편 △트래킹 편 △캠핑 편 등 3개 스토리로 제작됐다. 출발 편에선 현빈이 여행을 떠나기 위해 아웃도어 의류와 장비를 챙긴 뒤 힘차게 집 밖을 나서는 모습을 그렸다. 트래킹 편에선 자전거를 타고 숲속을 지나는 모습을,캠핑 편에선 모닥불을 피운 채 온 몸으로 자연을 느끼는 장면을 각각 담았다.

촬영은 쉽지 않았다. 섭씨 4~5도 안팎의 추운 날씨에 살을 에는 바람이 쉴새 없이 몰아친 탓이었다. 광고하는 제품이 봄 · 여름 신상품이었던 만큼 모델인 현빈은 촬영 내내 추위와 싸워야 했다. 김 과장은 "현빈은 추위 때문에 틈틈이 쉴 때마다 K2의 침낭으로 몸을 감쌌지만,촬영이 시작되면 마치 봄날씨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며 "광고를 자세히 보면 현빈의 피부에 소름이 돋아있는 걸 포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빈 입은옷 나오자마자 '완판'

이렇게 만든 광고가 방송을 탄 건 지난 2월26일.소비자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출발 편에서 현빈이 입은 흰색 바람막이 재킷은 3월 초에 준비한 물량이 모두 팔렸다. 통상 4월에 판매되는 얇은 재킷이 '현빈 효과' 덕분에 '완판'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남성용 제품인데도 여성 구매자가 많았다는 점이다. K2코리아가 여성용으로 준비한 색상은 노랑과 핑크였지만,여성들은 현빈이 입었던 흰색 재킷을 고집했다. K2코리아 관계자는 "트래킹 편에서 현빈이 입은 72만원짜리 고어텍스 재킷도 광고가 나간 직후 금세 다 팔렸다"며 "광고에서 현빈이 입은 옷은 다른 모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판매됐다"고 말했다.

K2코리아의 이미지가 '남성 중심의 전문 산악 브랜드'에서 '누구나 편하게 입은 아웃도어 브랜드'로 바뀌는데 '현빈 효과'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K2코리아는 또 다시 고민에 빠져 있다. 군에 입대한 현빈을 대신할 새로운 얼굴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K2코리아의 현빈 광고는 다음달 종료된다. K2코리아 관계자는 "마음 같아선 현빈과 2~3년 장기 계약을 맺고 싶지만 현역 군인이 상업광고를 찍을 수 없는 만큼 새 모델을 찾을 수밖에 없다"며 "현빈처럼 K2코리아를 돋보이게 해줄 '뉴 페이스'를 찾기 위해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