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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워인터뷰] "가슴 저미는 두 글자 '엄마'…연습 내내 눈물바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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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엄마를 부탁해' 주연 김성녀 중앙대 교수

    무대는 내 고향
    5세 때 천막극장서 데뷔…매캐한 무대냄새 고향처럼 푸근

    투쟁적으로 살아온 연극판
    가난한 배우 되고 싶지 않다…노래·춤·연기 '25시' 뛴 억척녀

    요즘 별명은 '성녀 마리아'
    한때는 '독사' '쌍칼' 이었지만 칭찬·격려의 힘 알게 됐죠
    다섯 살 무렵이었다. 극장 한 구석에서 놀던 그가 갑자기 무대를 째려보더니 "스톱" 하고 외쳤다. 연습 중인 악사들에게 다가가 "장단이 삐었어요"라며 발로 바닥을 탁탁탁 쳤다. "이렇게 해야죠." 어른들이 혀를 내둘렀다. "저,저,여우 중에서도 불여우 같으니…."

    천막극장에서 소꿉놀이하던 꼬맹이는 그해 아역 배우로 데뷔했다. 이후 56년째 먼지 냄새 매캐한 무대인생을 살고 있다.

    마당놀이,연극,뮤지컬을 넘나들며 전방위 연기를 펼치는 김성녀 중앙대 음악극과 교수(61).

    유랑극단의 의상 바구니에서 자고 놀던 그가 "예인(藝人)은 고생길이니 넌 절대 하지 말고 선생님이 돼라"던 엄마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걷고 있으니 운명도 핏줄을 타는가 보다. 그의 어머니는 여성 국극 스타 박옥진 씨(2004년 별세)다.


    "어릴 때부터 리듬감이나 음감을 타고났나 봐요. 엄마 아빠한테 물려받은 거죠.아빠는 연출자 겸 작가였어요. 노래와 연기는 엄마,연출은 아빠의 핏줄인지….뱃속에서도 그랬지만 태어나서 걸음걸이할 때부터 엄마의 아역으로 무대에 섰죠.다른 아이들과 달리 무대가 놀이터였어요. 매캐한 극장 냄새가 제게는 고향의 냄새예요. 지금도 무대가 제일 편하고 집 같아요. "

    그의 외가는 진도의 유명한 예인 가문이다. 대금산조를 처음 만든 박종기 명인,인간문화재 박병천 선생 등 대대로 예인 계보를 잇는 '갑(甲 · 으뜸)'의 집안이었다.

    그런 분위기를 탔는지 그도 어릴 때부터 엄마처럼 끼를 발휘했다. "꼬맹이가 어른들 따라다니며 하루 6~7회 공연을 하니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저녁 공연 때면 파김치가 돼 못 일어나는 거예요. 잠에 취한 제가 '아이스케키'를 입에 물고서야 겨우 일어나 무대로 나갔대요. 학교에 들어가면서 엄마 아빠와 떨어져 살기 시작했습니다. 6남매의 맏딸인데 집에서나 밖에서나 골목대장 역할을 했죠.동생들은 엄마 아빠의 교육을 받은 게 아니라 모두 저한테 교육을 받으며 자란 셈이죠."

    당시 살던 집은 서울 와룡동이었다. 그는 파란 군용텐트를 쳐놓고 플래시를 반짝거리며 동네 아이들을 모아 놓고는 '꽃과 나비' 등 연극 공연을 보여줬다. 어른들한테는 10원이나 사탕을 받으면서 했다. "골목길을 막고 천막 하나 치면 바로 공연장이 되는 거예요. 아이들이 서로 배역을 맡으려고 저한테 로비도 했죠.동생들에게 거의 모든 화음을 다 가르쳤어요. 5녀1남인데 남동생(김성일)은 지금 안무를 맡고 있어요. "

    그렇게 자란 소녀는 연극과 결혼하겠다며 시집은 가지 않고 국립극단에 들어갔다. 1970년대 월급은 20만원이었다. 가난을 각오했지만 궁핍의 그림자는 길었다. 낡은 운동화에 티셔츠 하나 걸치고 다녔다. 그는 '암흑의 시간'이라고 그때를 회상했다. 구두를 신어도 만날 똑같고,무대에서와 달리 촌스럽다는 소리도 자주 듣고.8남매의 맏이에게 시집을 가게 될 줄도 몰랐다. 그것도 돈 못 버는 연극쟁이와 만났다.

    그 남자가 연극연출가로 유명한 손진책 국립극장 예술감독이다. 남편과는 음악극 '한네의 승천'에서 연출가와 주연 배우로 만나 부부이자 동지가 됐다. 부모가 배우와 연출가 커플이었으니 이들은 2대째다.

    "그 양반이 연극을 연출하니까 저보다 더 돈이 없었죠.그래서 연극 외에 온갖 아르바이트를 다 했어요. TV에도 나갔죠.구멍 뚫린 버스 토큰이 있던 시절이었는데 그것만 있으면 든든했어요. 동전지갑에 동전과 토큰만 가득 넣고 다녔죠.언젠가 '전원일기'에 나갔어요. 대선배가 커피 한잔 마시고 싶다고 해서 제가 동전지갑을 열었는데 꽉 차 있던 토큰이 와르르 쏟아지는 거예요.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거 집으러 다니는 절 다 쳐다봤죠.대선배는 '어머머머,구멍 뚫린 동전도 있네' 하고….저한테는 너무나 큰 재산인데 말이죠.배꼽 밑에서부터 설움 같은 게 자르르 올라오면서 눈물이 막 쏟아지는데,앞으로는 가난한 배우가 되지 말자 다짐했죠.지금도 그 구멍 뚫린 토큰이 제겐 채찍이에요. 열심히 살아야겠다,돈 없다고 투덜거리지 말고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지지요. 그때부터 하루를 25시간으로 살았어요. "

    또 다른 설움도 있었다. 어머니가 쓰러지는 바람에 그는 대학에 제때 못갔다. 어느 날 연극판의 한 '엘리트'에게서 가슴에 못질하는 말을 듣고는 얼마나 울었던지."그날 이후 저를 투쟁적으로 가꿨어요. 공부도 하고 재능도 익히고,열심히 노래도 하고,무슨 일이든 다 했어요. "

    그는 결국 35세에 대학에 들어가 45세에 대학원을 마쳤다. 그렇게 자신에게 재투자한 10년이 그의 또 다른 자양분이다. "20~30대 때는 왜 나를 몰라주나,쟤는 나보다 못하는데 왜 더 주목받을까 했으나 어느 순간 제가 하는 일의 완성도도 높아지고 경제적인 것도 안정이 되더라고요. 10년간 씨를 뿌린 후에 보이기 시작했죠.배우라면 남하고 다르고 평소에도 꾸미고 다니고 해야 하는데,전 평범한 여자로 시장에서 순대 같이 먹고 하는 그런 사람이에요. 삶의 현장에서 부대끼며 배우니까 그게 힘이 돼요. 다른 배우들에게는 선물도 꽃바구니가 오는데,저한테는 떡만 와요. "

    그는 내달 5일부터 뮤지컬 '엄마를 부탁해' 주역으로 충무아트홀 대극장에 선다.

    "남편이 밤새 읽었나봐요. 눈이 퉁퉁 부은 채 책을 던져주면서 '이거 좀 읽어봐' 하더군요. 어쩜 저 양반이 밤새 울었을까.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러면서 약간의 반발심으로 책을 펼쳤죠.그러고는 이거 뭐가 눈물난다는 거야,우리 엄마도 나도 이만큼 다 했는데 했죠.그러다 운명처럼 이 작품을 하게 됐죠.제 나이에 노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거예요. 여기 나오는 아버지의 대사 '자네 나 벌주는가'처럼 이 작품이 제게 벌주는 것 같아요. 다시 읽어봤더니 문학적인 표현으로 엄마의 에피소드를 잔잔히 풀어가면서 저를 건드리는 게 보이기 시작했죠.너 한번 잘해봐라.멋모르고 재미없다더니 한번 잘해봐라…."

    그는 "운다고 다 좋은 건 아니지만 눈물의 미학이 있다"며 "대사를 하다가 감정이 고양되면 노래도 되고 시도 되고 에센스가 되는데 노래에 함축된 가사들이 절절하다"고 말했다.

    "대사를 할 때는 울음을 참을 수 있어요. 하지만 노래할 땐 눈물이 나면 목이 막혀서 정제된 연기를 못하니까 참으려고 하는데 안 울려고 해도 자꾸만 눈물이 나요. 하이라이트는 제일 마지막에 엄마가 유언하고 노래하며 가다가 돌아서서 '밥 잘 챙겨 먹고,늘 차조심 하거라…' 하는 대목인데 저도 울고 출연진도 울고 온통 눈물바다가 돼 버려요. 그게 바로 엄마가 우리한테 주는 마음인 것 같아요. 저도 계속 울면서 속죄하는 공연이고.모든 분들이 보고 엄마를 다시 생각하면 좋겠어요. "

    그의 딸(손지원)도 배우의 길을 택했다. "엄마를 넘어서는 배우가 되고 싶어했죠.영국에 가서 뮤지컬 '미스 사이공' 주역으로 활약했는데 투어 하다 목이 상해서 고생했어요. '맘마미아'의 소피 역할을 하다 목에 결절이 생겼는데 영국에서 5년 내내 기침을 했대요. 그렇게 몸이 망가져서 왔는데 이젠 '다원예술'을 하겠다며 독일로 가겠다네요. "

    딸은 어릴 때부터 엄마를 닮았다. 서너 살밖에 안 된 아이가 분장실 한쪽 구석에서 소꿉놀이하다 엄마가 넘어지는 장면을 보고는 '엄만 왜 넘어질 때도 예쁜 척해'라고 지적할 정도였다. 아들(지형)도 마찬가지다.

    "외국 나가서 영어 중국어 일어 다 마스터하고 와서는 예술경영과 기획을 한다고 그래요. 지금 극단 미추에서 기획에 참여하고 있어요. 요즘 그래도 가족이 다 함께 모여 살아서 너무 좋아요. "

    그는 아이들이 아프지 않았다면 자신이 오만했을 것이라며 옷자락을 여몄다. 그래서 '엄마를 부탁해'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드리는 헌정 작품 같다고 했다. "엄마한테는 자식들이 회한에 젖어 후회한다는 것.자식들한테는 엄마의 사랑을 주고 싶어요. 엄마와 자식들한테 못했던 걸 다 주고 싶어요. 연습하면서 눈물이 자꾸 나서 죽겠어요. 엄마가 유언하고 갈 때 이런 마음일까,하늘에서 이렇게 말할까 하고.딸이 울 때는 우리 딸 마음이 이럴까 싶고…."

    그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자주 듣는 별명은 '독사'와 '쌍칼'이다. "전공 분야는 칼같이 하죠.잘한다는 말보다 질책을 더 많이 하고.그런데 이젠 따뜻함이 필요하구나 싶어요. 딸이 아픈 걸 보면서 칭찬이 보약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학생들에게도 이젠 사랑을 주기 시작했죠.그래서 요새 별명은 '성녀 마리아'예요. "


    뮤지컬 '엄마를 부탁해'

    엄마의 삶과 가족의 회한 애잔한 선율에 감동 입혀
    내달 5일부터 충무아트홀 대극장


    김성녀 씨가 주연을 맡은 뮤지컬 '엄마를 부탁해'는 내달 5일부터 6월19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원작은 신경숙 씨의 동명 소설.원래는 연극과동시에 기획했지만 작곡 등 준비 작업에 시간이 걸려 조금 늦어졌다.

    김씨는 이 작품에서 실종된 엄마 역으로 열연한다.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서울역에서 길을 잃어버린 엄마.가족들은 엄마를 찾기 위해 신문광고를 내고 전단지를 붙이며 백방으로 수소문하지만 찾을 길이 없다. 이들은 새삼스레 엄마에 대한 기억들을 되짚어 보며 그동안 잘 몰랐거나 아무 생각 없이 무시했던 엄마의 인생에서 새로운 사실들을 하나 둘 발견하게 되는데….

    "언제나 그 자리에 말없이 희생으로 존재하던 엄마,병을 앓던 엄마의 고통에 무관심하기만 했던 가족,이기적인 이유로 엄마 혹은 아내를 필요로 했던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거죠.그 과정에서 엄마는 또 다른 시각으로 가족을 걱정하고 어루만지며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게 되지요. "

    안무는 그의 남동생인 김성일 씨가 맡고 배우 김덕환 이계창 차지연 김경선 씨가 가족 역으로 출연한다.

    연출은 구태환 씨가 맡았다. 그는 '엄마'를 다룬 연극 '친정엄마' '친정엄마와 2박3일'을 통해 예술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코드를 함께 녹여낸 연출자.이번에는 대본과 조명 디자인까지 책임진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맛은 작곡가 김형석 씨의 음악이다. 대중음악은 물론 영화와 뮤지컬을 넘나드는 그는 이 작품에서 울림이 깊은 선율로 작품의 퀄리티를 높여줄 예정이다.

    특히 메인 테마 '미안하다'는 유려한 피아노와 현악기의 선율이 돋보이는 곡.자식들에게 한없이 베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는 엄마의 심정을 고스란히 녹여낸다. 그 애잔한 음색이 엄마를 잃어버린 가족의 죄책감 위에 얹혀져 긴 여운을 남긴다.

    만난사람=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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