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노 김용걸 씨(38 · 사진)는 카페에 앉자마자 스테이크를 달라고 했다. 오는 22~24일 국립발레단의 창작발레 '왕자호동'에서 남자 주역으로 무대에 서는 그는 연습 직후 먹을 것부터 찾는다. 동작이 크고 점프가 많아 20대 무용수도 힘들어 하는 작품이니 그럴 만도 하다.

"처음엔 힘들었어요. 부상도 걱정됐죠.그런데 요며칠 점프가 좋아졌어요. 얼마 전까지 제가 고함치며 가르쳤던 제자들이 무대에 선 '발레리노 김용걸'을 볼 거라고 생각하니 기운이 솟네요. 의자에 팔짱 끼고 앉아 지시만 내리는 무용과 교수는 제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었거든요. "

그가 국립발레단 무대에 서는 건 2006년 '해적' 이후 5년 만이다. 2000년 이후 한국 무대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그를 볼 수 있다는 것,마흔을 바라보는 남성 무용수가 주역을 맡았다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은 벌써 설렌다.

그는 1995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수석무용수로 활약하다 1998년 김지영과 함께 파리국제발레콩쿠르에서 금상을 딴 뒤 2000년 파리오페라발레단 최초의 동양인 남성무용수로 입단,종신단원직으로 솔리스트까지 승급했다. 2009년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과 교수로 부임했다.

'왕자호동'은 1988년 초대예술감독이었던 고(故) 임성남의 안무를 그의 제자인 문병남 부예술감독이 재안무해 2009년 초연한 국립발레단의 창작발레 작품.오는 10월 이탈리아 산 카를로 극장의 초청으로 원정 공연도 떠난다.

그의 파트너는 15세 아래의 발레 영재 김리회 씨(24).낙랑공주 역의 김리회 씨는 "대선배와 함께 주역을 맡아 부담이 컸는데 연습을 시작하자마자 괜찮아졌다"며 "또래 무용수들과는 테크닉이나 동작을 익히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반면 김용걸 선배와는 감정 표현과 드라마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단원들도 이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한다. 왕자가 죽고 공주가 흐느끼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파리에서의 9년은 제 인생을 만든 시간이었어요. 그때 느낀 것 중 하나가 연습실이 최고의 학교라는 거예요. 주변에서 연습하는 모든 동료가 제 우상이었죠.서로가 그렇게 느끼면서 연습해요. 무대에 선 제 모습,연습실에서 땀 흘리는 제 모습을 보며 단 한 명이라도 자극받을 수 있다면 정말 고마운 일이죠."

그는 부상에 시달리고 진통제로 몇 달을 버틴 적도 있지만 파리의 무용수들이 부상을 견뎌내는 태도를 보고 깨달은 게 많았다고 했다. "아무리 조심하고 노력해도 부상은 막을 수 없어요. 부상을 당하면 아예 마음 푹 놓고 쉬는 거죠.모차르트 음악만 2~3개월 듣기도 하고,영화를 몇십 편 연달아 보거나 프랑스어 공부를 하며 버텼어요. "

그에게선 아직 무대에서 날고 싶은 무용수의 열정과 교육자로서의 의지가 동시에 묻어났다. 올초 국립발레단이 파리오페라발레단 버전의 '지젤'을 무대에 올릴 때도 그는 통역과 액팅 코치를 맡아 후배들을 챙겼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