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현대캐피탈 고객정보 유출에 이어 농협은 전산망이 1주일째 마비상태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66조원은 이곳저곳에서 터져나가고 있다. 저축은행들은 "나부터 살자"며 PF대출을 무차별 회수하는 상황이다. 한계 건설사들의 줄도산과 은행의 부실채권 급증은 그 결과다. 증권사들도 부실 CP(기업어음) 판매에다 ELW 수사로 뒤숭숭하다. 도무지 성한 곳을 찾기 힘들 정도다.

일련의 사태는 당사자인 금융회사들에 1차 책임이 있지만 금융당국의 감독 실종과 뒷북 대응도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 우선 농협 사태는 금융당국이 금융 정보보안을 얼마나 안이하게 보고 무대응으로 일관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금융거래가 100% 전산화됐는데 금융감독원의 IT 검사인력은 달랑 11명이다. 11명이 180여개 금융회사를 들여다봐야 하니 수박 겉핥기일 수밖에 없다. 금감원은 사상 초유의 사태가 터지고서야 민 · 관합동 TF를 만들겠다고 야단이다.

저축은행의 무차별 PF대출 회수도 금융당국의 조급한 수치목표에서 비롯됐다. 저축은행들은 이미 PF대출 12조2000억원의 4분의 1이 연체돼 제 코가 석 자인 상태였다. 멀쩡한 PF대출도 연장을 거부하고 빚 독촉에 급급했다. 그러니 한계선상에 놓인 건설사들로선 채권단 자율조정 워크아웃을 아예 기대할 수 없다. 잇단 법정관리 신청을 꼬리자르기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영원한 대책반장' 김석동 위원장과 '금융의 종결자'가 되겠다는 권혁세 원장 체제로 개편됐다. 김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금융위원회의 존재감만으로도 시장의 기강이 서도록 하겠다"고 일갈했고,권 원장은 "더이상 관용은 없다"고 다짐했다. 이들은 부실 저축은행 8곳을 정리하는 전과를 올렸지만 남은 저축은행들이 겪을 후유증은 헤아리지 못한 것 같다. 당국은 뒤늦게 오늘 5대 금융지주 회장들과 긴급간담회를 갖고 저축은행들의 무차별 자금회수에 대한 대책을 논의한다고 한다. 지금 금융시장에 필요한 것은 해결사나 종결자가 아니라 정교한 조율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