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골퍼가 한 홀에서 16타를 쳤다. 파4홀에서 12오버파를 친 것이다.

재미교포 케빈 나는 15일(한국시간) 미국 PGA투어 발레로텍사스오픈(총상금 620만달러) 1라운드가 열린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의 TPC샌안토니오 오크스코스(파72 · 7522야드) 9번홀(파4 · 474야드)에서 기준타수의 4배에 해당하는 스코어를 기록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버디 2개와 보기 1개로 1언더파를 기록 중이던 케빈 나는 9번홀에서 티샷이 심하게 우측으로 밀렸다. 잔 나뭇가지들이 뒤엉켜있는 덤불속에서 공을 찾았으나 부러진 나무 아래로 공이 들어가 칠 수 없었다. 경기위원을 불러 '언플레이어블(1벌타)'을 선언하고 다시 티잉그라운드로 돌아갔다. 재 티샷(3타째)을 하는 순간 케빈 나는 균형을 잃으면서 드라이버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공은 첫 티샷이 떨어졌던 곳으로 다시 날아갔다. 공을 잃어버릴 것에 대비해 케빈 나는 잠정구를 치고 나갔다.

다행히 공을 찾았고 스탠스도 취할 수 있어 샷이 가능했다. 하지만 얽히고 설킨 나뭇가지 사이로 공을 빼내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케빈 나가 "빠져 나갈 수 있을까"라고 묻자 캐디는 "확률은 반반이다"고 답했다. 크게 탄식을 한번 내뱉은 케빈 나는 공을 쳤다. 그 순간 공이 앞의 나무를 맞고 뒤로 튕겼다. 그런데 케빈 나는 "공인지 나뭇가지인지 모르지만 오른쪽 안쪽 허벅지에 뭔가 맞았다"고 실토했다. 자신이 친 공에 몸이 맞으면 1벌타를 받아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케빈 나의 공은 샷이 불가능한 잡풀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경기위원을 다시 불러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해 또 1벌타를 추가했다.

4번째 샷에다 2벌타를 더하다 보니 어느덧 7번째 샷이 됐다. 7번째 샷도 나무를 맞고 떨어졌는데 오른손으로 샷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케빈 나는 급격하게 흔들렸다. 침착함을 잃고 '초보 골퍼'처럼 허둥지둥 샷을 해대기 시작했다. 왼손으로 친 8번째 샷은 허공을 가르는 헛스윙이 되고 말았다. 스윙을 하려는 의도가 분명했기 때문에 타수로 인정됐다. 왼손으로 친 9번째 샷은 1야드도 나가지 않았다.

10번째 샷은 나무를 맞고 원위치로 되돌아왔고 그 다음 샷도 나무를 맞고 우측으로 떨어졌다. 12번째 샷도 나무를 맞고 뒤로 갔다. 케빈 나는 흥분을 참지 못해 욕을 해댔다. 13번째 샷 만에 공을 러프로 빼내며 덤불 속을 탈출했다.

케빈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쓴 웃음을 지었다. 그는 "어떻게 스코어를 세느냐"고 캐디에게 물었고 캐디는 "나도 모르겠다. 아마 녹화테이프를 보고 타수를 계산할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케빈 나의 스코어는 처음 14타로 나왔다가 15타로 정정된 뒤 최종 16타로 확정됐다.

14번째 샷은 그린 좌측으로 살짝 넘어갔다. 에지에서 퍼터로 친 15번째 샷은 홀을 2m가량 지나쳤고 이를 1퍼트로 막으면서 16타를 기록한 것.

케빈 나는 "한 홀이 대회 전체를 망칠 수 있다. 그러나 이후 나는 보기 없이 3개의 버디를 잡아내며 나를 컨트롤했다. 다시 티샷을 했다면 쿼드러플보기(8타)로 막을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그는 이 홀만 파를 기록했어도 4언더파 68타를 기록할 수 있었다. 케빈 나는 8오버파 80타로 공동 140위다.

PGA투어의 한 홀 최다 타수 기록은 1927년 토미 아머가 세운 23타다. 1998년에는 존 데일리가 베이힐인비테이셔널 6번홀(파5)에서 18타를 친 적이 있다. 1938년 US오픈에선 레이 아인슬리가 16번홀(파4)에서 19타를 쳤다.

한편 스튜어트 싱크와 J J 헨리(이상 미국)가 나란히 5언더파 67타를 쳐 공동 1위로 나섰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