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협-학부총학생회, 서남표 총장 퇴진압력 주춤
구성원간 이견 여전…학교 밖 총장 사퇴요구 확산

학생 4명의 잇따른 자살로 불거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위기사태가 교내 차원에서는 수습국면에 들어갈 전망이다.

교수협의회가 13일 요구한 혁신비상위원회 구성을 서남표 총장이 전격 수용하고 학부생들도 총장에게 개혁실패를 인정하라고 요구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 총장의 핵심 개혁정책에 대해 학생들이 개선을 요구하기로 의결했고, 혁신위가 내놓게 될 결론에 대해 총장과 교수협의회가 서로 다른 전망을 내놓고 있는 데다 정치권을 비롯한 외부에서는 여전히 사퇴 압력이 거세 사태수습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풀 꺾인 학내 퇴진 목소리 = 서 총장은 이날 교수협이 온라인 투표를 거쳐 요구한 혁신위 구성을 받아들였다.

교수협의 요구가 있은 지 두시간도 되지 않아 수용방침을 밝힘에 따라 이를 거부할 경우 즉각 요구하기로 했던 '용퇴' 거론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 앉게 됐다.

이에 따라 교학, 대외, 연구 부총장을 포함해 서 총장이 지명하는 5명과 교수협의회가 지명하는 평교수 5명, 학생 대표 3명 등 혁신위에 참여할 위원 선정작업이 시작됐다.

혁신위는 앞으로 3개월(필요시 1개월 연장) 동안 교수협이 필요하다는 '새로운 리더십'의 구체적인 내용을 정하기 위해 학교 전반에 관한 모든 사항을 논의해 최종 보고서를 내놓게 되는데 서 총장은 혁신위의 결정을 반드시 수용하고 하게 즉시 실행해야 한다.

학부 총학생회도 이날 오후 7시부터 대학본부 앞 잔디밭에서 사상 첫 비상총회를 열고 안건을 다뤘으나 서 총장에 대한 개혁실패 인정 요구는 투표에 참여한 852명 가운데 찬성 학생이 과반수에 10명이 못미치는 416명에 그쳐 부결됐다.

반대는 317명, 기권이 119명 이었다.

총학이 "서 총장 취임 이래 각종 학사제도가 경쟁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는데 경쟁이 과열되고 학생들이 받는 심리적 압박이 심해지면서 애초에 예상했던 문제들이 현실화됐다"며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경쟁과 규제 일변도의 교육 정책과 방향의 실패를 총장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고 안건을 상정했지만 반대하는 의견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핵심 개혁정책은 수정 불가피 = 그러나 비상총회에서 학부생들은 서 총장의 핵심 개혁정책이라 할 수 있는 전면 영어강의와 재수강 횟수제한 등에 대해서는 개선을 요구키로 의결했다.

또 학교 정책결정 과정에의 학생대표 참여 및 의결권 보장 제도화, 학사경고 1학년생 지원 강화, 그동안의 개혁에 대한 평가진행팀 구성 및 평가보고서 작성 공개, 총장선출시 학생투표권 보장 등도 요구키로 해 주요 정책에 대한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 총장은 학부생들의 요구사항에 대해 3일이내에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으며, 학교측도 8학기 이내에 학부과정을 마치지 못하는 연차초과자의 경우를 제외하고 학부 4년 동안은 성적에 관계없이 '징벌적 수업료'를 부과하지 않기로 한 데 이어 교양과목 영어강의에 대한 개선방향과 학부생들의 학업부담 완화방안을 논의중이다.

대학원생들도 총회에서 소통강화를 위한 '대학교육정책 최고 자문 위원회' 구성과 함께 '대학 연구 환경 개선 혁신'을 위한 비상 TF팀 구성, 연차 초과자 제도 및 기성회비 부과 개선, 학과 학생연구 위원회 설치 등을 대학 측에 요구하기로 했다.

◇총장-교수협-학생 동상이몽(?) = 혁신위가 요구할 변화폭에 대해 서 총장과 교수협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 사태 악화의 불씨가 될 소지를 안고 있다.

서 총장은 이날 오후 4시께 마련된 기자간담회에서 "혁신비상위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학교가 나아가야 할 전체적인 방향에서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는데 이는 혁신위원 13명 가운데 자신이 지명하는 5명이 있어 혁신위 결정에 상당부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반면 기자간담회에 동석한 경종민 교수협의회장은 "서 총장이 혁신위 구성 요구를 받아들인 것은 개혁 과정에 구성원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대한 동의이자 앞으로 학교에 많은 변화가 있을 수 있는데 아픔이 있더라도 함께 짊어지고 나가자고 약속하는 것"이라고 말해 변화폭을 크게 예상하고 있다.

특히 교수협은 '새로운 리더십'의 의미에 대해 "단순히 서 총장의 변화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획기적인 변화가 없으면 용퇴를 요구한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며 "새로운 지도자를 의미할 수도 있다"고 못박았다.

학생들도 자신들이 의결한 핵심 개혁정책 개선 요구가 받아들여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학교측이 전날 발표한 학사운영 개선안에 대해 총장이 크게 화를 내며 반대하자 5시간만에 백지화했기 때문에 어느정도 수용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강도 더해가는 외부의 서 총장 사퇴압박 = 학내 분위기는 점차 진정되는 분위기이지만 외부의 서 총장 사퇴 목소리는 오히려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은 13일 서 총장에 대한 해임촉구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결의안에서 "최근 KAIST에서의 잇따른 자살 사태는 무리한 학사운영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기인하는데도 서 총장은 '경쟁이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등 반교육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책임을 통감하지 않은 채 사퇴를 거부하는 서 총장을 즉각 해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날 교과위 전체회의에서는 임해규.정두언.조전혁 의원 등 한나라당 교과위원들도 한 목소리로 서 총장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와 전국교수노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 역시 11일 서울대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 총장이 최근의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참여연대도 같은 날 징벌적 수업료제 등에 위법성과 공익 저해요소가 있다며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했다.

한 포털사이트에서는 서 총장 사퇴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지금까지 3천400여명이 참여했다.

(대전연합뉴스) 정윤덕 기자 cobr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