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인류가 누리고 있는 물질적인 풍요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것이 아니다. 경제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지난 2000년간 세계 경제의 성장은 전기 1000년보다 후기 1000년 동안 훨씬 빠르게 진행됐다.

전기 1000년 동안 세계의 인구는 16.2%(연 0.015%) 증가했고 1인당 소득은 오히려 약간 감소했다. 그러나 후기 1000년 동안(1000~1998년) 세계 인구는 2200%(연 0.31%),1인당 소득은 1300%(연 0.26%) 늘었다.

후기 1000년은 다시 1000~1820년과 그 이후로 나눠볼 수 있다. 1000~1820년엔 소득의 증가율이 매우 낮았고 1인당 생활수준의 향상보다는 늘어나는 인구를 부양하기에도 벅찼다. 이 기간 세계 인구는 약 390%(연 0.17%),1인당 소득은 약 53%(연 0.052%) 증가했다.

그러나 1820년 이후 세계경제의 성장은 눈부셨다. 1820년부터 1998년까지 세계 인구는 약 560%(연 0.97%),1인당 소득은 약 850%(연 1.21%) 증가율을 보였다.

이와 같은 개괄적인 서술은 지난 1000년 동안 나타난 엄청난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무시한 것이다. 나아가 세계경제의 진화는 식민지 지배와 제국주의 및 전쟁에 의한 인간성 말살과 같은 어두운 그림자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 생활수준의 진화를 지극히 피상적이게도 시대별로 구분해 본 것은 인류의 경제적인 진보를 가능하게 한 요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위함이다.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820년 이후와 그 이전의 세계 경제는 적어도 세 가지 점에서 크게 달랐다. 먼저 1820년 이전의 생산에서는 공급이 고정돼 있는 토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생산요소였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공장,기계설비와 같은 물적 자본이 생산의 핵심이었고 물적 자본의 축적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었다. 토지와 같이 고정된 생산요소가 필수적일 때 생산량의 증가와 함께 노동생산성이 체감하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물적 자본의 축적은 한계가 없을 정도이며 그 질을 개선함으로써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1820년 이후 물적 자본의 축적과 함께 자본을 움직이는 동력을 수력(물레방아) 대신 화력(증기기관)으로부터 얻게 됐다. 수력을 이용하기 위해 물의 낙차가 큰 산기슭에 설치했던 생산시설을 증기기관의 도입과 함께 노동력이 있는 도시로 이전하게 된 것이다. 풍부한 노동력과 물적 자본의 결합은 노동생산성을 크게 증대시키는 계기가 됐다.

마지막으로 19세기는 세계 무역이 크게 일어난 시대다. 물론 식민지 무역의 아픈 상처를 잊을 수 없지만 무역을 통해 새로운 상품과 기술 그리고 제도가 세계 각지로 전파된 사실을 특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이 같은 세 가지 면에서 기로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를 지나면서 앞으로 경제성장의 동력은 물적 자본의 축적에서 인적 자본,새로운 아이디어와 지식의 축적으로 이동한다는 것이 정설로 됐다. 화석연료가 고갈될 날이 머지않았으며 그린에너지는 이미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가 됐다. 그리고 이 나라는 미국,유럽연합(EU) 등과의 자유무역협정 비준을 눈앞에 두고 있다. 큰 시장으로의 보다 자유로운 접근을 위한 모색인 것이다.

다시 한번 역사는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는 선택의 결정적인 순간에 현명한 지도자들을 갖지 못한 뼈아픈 경험이 있다. 지금 슬로건은 사방에 펄럭이고 있으나 과감하게 앞서나가는 지도자는 보이지 않는다. 이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역사를 두려워하라는 고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조장옥 < 서강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