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학생이 보충수업 교사 선택…이름 걸고 가르치니 잘 할 수밖에"
'시골 교장' 반옥진(57)이 근무하는 전남 장성고는 호젓함이 느껴질 정도로 외진 곳에 있다. 장성읍 외곽에서도 샛길을 끼고 돌아야 겨우 교정이 보이는 조그마한 시골 학교다. 그는 이곳에서 전국 최정상 수준의 수재들을 길러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장성군은 2011년 대학입시 수학능력시험에서 언어,수리 가 · 나,외국어 등 4개 영역 모두 전국 1위를 싹쓸이했다. 장성의 유일한 일반계고로 발군의 성적을 올린 장성고의 실력이 오롯이 반영된 결과다. 개교 26년 역사 속에 올해까지 14년 연속 졸업생 전원 4년제 대학 입학이라는 기록도 이어가고 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다'는 찬사가 쏟아지면서 이 학교는 전국 대표 명문 사립고로 도약했고,지역민들에겐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 · 학문으로 장성에 견줄 만한 곳은 없다)'이란 옛 명성을 재현한 자긍심으로 자리잡았다. 도시에 비해 교육 여건이 크게 뒤처지는 모든 농어촌 학교에 용기와 희망을 주는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는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라며 "학교는 학생들이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만 제공할 뿐"이라고 말했다. 각지에서 밀려드는 축하 인사와 방송 출연 교섭 등으로 전화통에 불이 나고 있는 교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성적을 향상시키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학생들은 끝없이 물을 빨아들이는 스폰지와 같습니다. 얼마나 많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게 공부를 스스로 하고자 하는 동기 부여가 되거든요. 여기에 교장과 교사,학생에 이르기까지 잦은 소통을 통해 서로 벽과 거리를 없앤 것도 주효했습니다. 학교는 학생들이 면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분위기 조성에 힘썼습니다. 생활지도에서 공부에 방해되는 휴대폰 사용,흡연,학교폭력 등을 처음부터 엄격하게 규제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칭찬을 많이 했습니다. 칭찬보다 더 좋은 성적 촉진제는 없다고 봅니다. "

▼남다른 수업 방법도 관심을 모으는데.

"교사실명제와 이동식 수준별 수업은 전국 50여개교에서 배워 갔습니다. 교사실명제 수업이란 보충수업시 학생들이 교사를 선택하도록 한 것입니다. 사설 학원의 시스템을 도입한 건데,학생 참여도가 98%에 이를 정도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이동식 수준별 수업은 국 · 영 · 수 3개 과목에 한해 3단계로 나눠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상위권의 토론식 수업은 입학사정관제 전형시 구술과 심층면접 등에서,하위권의 영 · 수 집중반은 상위권과의 학력 격차를 줄이는 데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

▼정규수업 외에 보충수업,심화반,특별수업으로 숨가쁘게 이어지다보면 학생들이 지치지 않습니까.

"아이들이 학업에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먼저 학교 생활이 즐거워야 합니다. 요즘 특기적성교육이 유명무실하다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우리는 다릅니다. 특기적성교육을 매일 오후 1시간씩 편성 운영하고 있습니다. 80%가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아이들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서죠.골프 포켓볼 사물놀이 테니스 농구 등 30개반을 편성했는데 초창기 땐 사실 조마조마했습니다. 성적이 떨어지면 쏟아질 비난 때문이었죠.결과는 성공이었습니다. 2004년엔 교육부에서 특기적성 성공 사례로 발표될 정도로 전국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체육대회 등 각종 교내 행사를 학생들의 자율에 맡겨 운영하는 것도 자발적 참여를 통한 흥미 유발이 목적입니다. 행사의 기획 진행 평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학생들에 의해 이뤄지면서 행사 자체도 훨씬 내실 있게 거듭나고 있죠."

▼우수한 학생들을 모아놓고 좋은 성적을 내는 건 당연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우수한 학생을 모은 것은 아닙니다. 1985년 개교 후 몇 년간은 학생들이 없어 전남 각지를 누비며 학생 모집에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땐 4학급 채우기도 벅찼죠.교사들의 헌신적인 열정과 학생들의 하고자 하는 의지가 어우러지면서 대학입시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인재들도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과정은 학교의 노력이 객관적으로 입증받는 절차였다고 보는 겁니다. 이렇게 형성된 면학 분위기는 또 기초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에게도 훌륭한 자극제가 됩니다. "

▼개교 무렵엔 얼마나 어려웠나요.

"장성고는 애초에 장성 지역민들의 열화 같은 요청으로 설립된 학교입니다. 당시로선 드물게 기숙사도 함께 건립했죠.장성에서 학교를 다닌 설립자가 아이들이 시골집에 있으면 일을 해야 한다며 공부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을 위해 뜻을 굽히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교실 창문을 키높이보다 높게 설계한 것도 학생들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배려 때문이었고요. 그런데 막상 문을 열고 보니 일반계고를 만들어달라던 사람들조차 자녀를 광주로 유학보내면서 교실과 기숙사는 몇 년째 텅텅 비었습니다. 이러다 문닫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에 잠을 설친 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대도시에서 자취 · 하숙하는 학생들의 생활지도 난맥상을 들어 기숙사가 있는 점을 집중 부각하면서 광주에 나가 있는 학생 재유치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3년쯤 지났을까,학교 뒤편 마을 중학교 졸업생 11명 중 장성고에 입학한 4명만이 4년제 대학에 진학한 것이 입소문을 타면서 비로소 안정궤도에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

▼교사 관리는 어떻게 합니까.

"교사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매주 '월요스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새로운 교수법,외부의 좋은 자료와 교재 활용법 등을 집중 연구해 결과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새로운 교육정책과 달라진 입시제도 등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기도 하는데,돌아가며 강의하고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교사들 간 소통도 중시하고 있습니다. 매달 여는 친목회를 비롯해 야유회 등산 등을 통해 다져진 공동체 의식은 학생 지도에 시너지효과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휴일과 방학도 없이 매일 오후 10시까지 학생 지도에 나서는 교사들에게 일한 만큼 아직 제대로 된 대우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

▼현행 입시제도에 대한 견해는.

"학교의 서열화,학벌 위주의 사회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입시제도만 손질한다는 건 미봉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입시에 정부의 간섭과 통제를 줄이는 대신 대학 자율을 더욱 확대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대입제도도 인구 감소에 따라 많은 변화가 예상됩니다. 지금처럼 학생들이 전적으로 대학 진학에만 매달리지도 않을 것이고,사교육 시장도 지금보다는 훨씬 위축되리라고 봅니다. "

▼농어촌 고교는 사교육 사각지대에 있다는 게 큰 약점으로 지적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이나 교사가 모든 것을 자체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고 발휘하는 데 익숙해 있습니다. 이런 것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학교의 경쟁력이 되고 있습니다. 또 일본 아오모리현 쇼후주쿠고교와 자매결연을 맺어 학생 교류를 하며 국제감각을 길러주고 있죠.올해로 14년째 교류해오고 있는데,매년 양교 학생들이 만나 홈스테이를 하며 돈독한 우정을 쌓고 있습니다. 장성고의 약진은 공교육 활성화의 새로운 단초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공교육을 큰 항공모함에 비교한다면 사교육은 소형 선박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우리 공교육은 변화에 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조그마한 성과주의에서 오는 정책의 잦은 변화,이런 것은 지양돼야 합니다. "

▼체벌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뜨거운데,어떻게 생각합니까.

"2002년 무렵이었을 겁니다. 이른 아침 교무실 전 교사의 책상에 빨간 장미꽃 한 송이와 함께 대나무를 직접 쪼개 만든 '사랑의 매' 하나씩을 놓아둔 적이 있습니다. 물론 도가 지나친 체벌은 교육이 아닌 폭행입니다. 이런 권위주의 시대의 유물은 영구히 추방돼야 합니다. 하지만 교육자는 비록 욕을 먹더라도 해야 할 책무를 피하지 않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장성=최성국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