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무뚝뚝해 보이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현대가(家)의 '적통성(嫡統性)'을 다시 확인하는 설렘과 각오,또다른 도전이 느껴졌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1일 오전 7시를 갓 넘긴 시간 서울 계동 현대사옥에 모습을 보였다. 현대건설을 인수한 이후 첫 조례를 주재하기 위해서다. 소감을 묻는 질문에 "감개무량하다. (계동 사옥에 온 건) 11년 만"이라고 답했다

◆"현대건설, 글로벌 일류로 키울 것"

짙은 회색 정장에 붉은색 넥타이를 맨 정 회장은 로비에 진을 친 취재진에게 악수를 청했다. 밝은 표정이었다. "고생한다"는 인사도 건넸다. 그가 이끌고 있는 현대차그룹은 형제 간 경영권 갈등 이후인 2001년 4월 양재동으로 옮겼다. 정 회장은 이후 계동 사옥을 방문한 적이 있으나 2004년 이후 발길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계동 사옥에) 자주 출근하겠다"고 했다. 양재동과 계동을 번갈아 오가며 그룹 현안을 직접 챙기겠다는 뜻이었다. "잘 될 겁니다. 잘해야죠." 맘속에 담아둔 말들을 꺼냈다.

정 회장은 현대건설과 자회사 임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오늘은 현대건설이 현대차그룹의 일원이 돼 함께 첫발을 내딛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현대차그룹과 한가족이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임직원에게 인사했다.

"현대건설이 어렵고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일등 기업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노력해 준 임직원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정 회장이 "건설 부문을 자동차,철강과 더불어 그룹의 3대 미래성장동력으로 육성할 것"이라고 밝히자 임직원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현대건설에 10조원을 투자해 2020년까지 수주 120조원,매출 55조원의 '글로벌 초일류 건설사'로 키우고 현대차그룹과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겠다는 것이 정 회장의 복안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날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최종 잔금 4조4641억원을 치러 인수절차를 끝냈다. 현대건설 인수로 계열사 50개,총 자산 126조원,임직원 18만4000명으로 몸집을 불렸다.

◆"빛나는 10년 도전하자"

현대가의 상징인 계동 사옥은 1983년 완공 후부터 현대그룹의 총본산 역할을 해온 곳이다.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은 계동 사옥을 가리켜 "세계경제를 이끄는 중심지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건물을 넘어 현대그룹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곳이다. 부친의 혼이 담긴 계동 사옥에 정 회장이 다시 발을 들여놓으며 감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던 이유다.

계동 사옥은 첫 건축 당시 본관 12층과 별관 6층으로 구성된 두 동짜리 건물이었다. 1996년에는 본관 2개층을 늘려 15층으로 바뀌었다. 13이란 숫자가 서양에서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이는 점을 감안해 계동 사옥엔 13층이 없다.

증축 전에는 정 명예회장이 본관 12층,맏아들 정몽구 회장이 10층,고(故)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6층을 썼다. 2개층이 늘어나면서 정 명예회장이 15층,정 회장이 14층에 집무실을 두며 현대의 성장을 이끌었다.

정 회장은 선친의 추억과 손때가 묻은 15층에 집무실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정 명예회장 10주기 추모행사와 현대건설 인수를 마무리한 뒤 대내외에 '현대가의 적통성'을 공식화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과거 현대의 영광을 현대차그룹이 같은 장소에서 재현하겠다는 뜻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 임직원들은 계동 사옥을 가리켜 '현대의 영광을 대변하는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1970~1980년대에 중동 건설 신화를 꿈꾸며 현대를 재계 1위의 기업으로 도약시킨 광화문 사옥에 이어 영욕의 역사가 묻힌 곳이란 의미다.

현대건설 임직원들도 정 회장의 방문에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초 과장급 이상이 참석하기로 한 임직원 조회에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몰려 상당수 과장들은 자리에 앉지 못했다.

안정락/박영신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