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이 금융연구원 아시아개발은행(ADB) 국제금융학회 등과 함께 22일 개최한 국제통화시스템 컨퍼런스에선 글로벌 불균형 해소를 위한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제시됐다. 국제금융학계의 세계적 권위자인 리처드 쿠퍼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국제통화시스템의 미래' 세션에서 "글로벌 불균형의 원인 중 하나인 과도한 외환보유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이 5년에 한번씩 외환보유액 목표치를 발표하고 이에 맞춰 국제통화기금(IMF)이 특별인출권(SDR)을 배분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이날 컨퍼런스에선 달러를 공급하면 경상수지 적자가 늘어나고 달러 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트리핀 딜레마'에 대한 열띤 논쟁도 벌어졌다.

◆쿠퍼 "과도한 외환보유액 줄이자"

쿠퍼 교수의 이날 제안의 핵심은 지난해 10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한국이 제안한 '경상수지 목표제'보다는 '외환보유액 목표제'를 채택하는 것이 글로벌 불균형 해소에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경상수지 불균형을 없앨 경우 그동안 미국이 수요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세계 경제가 지탱해온 무역 구조가 사라져 어느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며 "대신 외환보유액 목표치를 각국이 발표하고 국제사회가 이를 인증해,이를 근거로 SDR을 배분하면 글로벌 불균형을 효과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SDR은 IMF가 1968년 도입한 일종의 가상 화폐로 주요국의 통화가치를 가중 평균해 교환비율을 정하고 있다.

◆트리핀 딜레마도 쟁점

쿠퍼 교수는 또 트리핀의 딜레마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트리핀의 딜레마라는 개념은 통화의 수요가 금의 공급량보다 빠르게 증가할수록 문제가 생긴다는 것인데 SDR이 만들어진 순간 딜레마는 사라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리칭 중국 중앙재경대 교수는 "특정국가의 화폐가 기축통화로 남아 있는 한 통화의 충분한 공급과 안정성 유지라는 두 가지 상충된 목표를 지향해야 하기 때문에 트리핀 딜레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며 "달러가 국제통화시스템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발행국으로서 미국이 누리는 특권에 대한 논쟁도 있었다. 장리칭 교수는 "미국은 화폐 발행에 들어가는 비용만으로 외국의 상품을 수입할 수 있는 화폐주조차익(시뇨리지 효과)을 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쿠퍼 교수는 "시뇨리지는 달러를 많이 발행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것인데 충분한 달러의 발행은 특권이라기보다는 의무"라고 반박했다.

◆달러 vs 제2의 기축통화

장리칭 교수는 "달러화 중심의 국제통화시스템은 양적완화와 같은 기축통화 발행국(미국)의 국내 통화정책이 다른 국가들에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끼치는 등 불안정하고 불평등하다"고 말했다. 그는 "SDR이 기축통화가 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다"며 "단기적으로는 복수통화 시스템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위안화의 국제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마이클 데브루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교수는 "2008년 금융위기는 통화위기가 아니었다"며 "국제통화시스템보다는 금융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창재/유승호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