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어느날.이병철 삼성 회장과 구인회 LG 회장이 마주 앉았다. 둘은 국민학교 동창이자,사돈지간이었다. 담소가 오가던 중 이 회장이 친근한 어투로 한마디를 던졌다. "구 회장,우리도 전자 사업을 하려고 하네." 순간 구 회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격앙된 어조로 "(돈이) 남으니까 하려고 하지"라며 역정을 냈다. LG 사업에 삼성이 뛰어드는 데 대한 원망이었다. 그것으로 대화는 끝났다. 두 사람은 끝까지 화해하지 않았다. 삼성과 LG의 TV전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후 40여년간 양사는 틈만 나면 크고 작은 싸움을 벌여왔다. 소송을 한 적도 있고 사장들이 멱살잡이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회사의 경쟁은 결과적으로 '기술개발과 글로벌 시장 개척의 역사'이기도 했다.

1975년 후발주자인 삼성이 5초 만에 켜지는 '이코노 TV'를 내놓아 인기를 끌자,LG는 이후 100여개에 가까운 모델을 내놓으며 수성에 나섰다. 1980년대 삼성이 이코노믹TV,음성다중 액설런트TV로 역전에 성공하자 LG는 음성다중TV 등을 내놓고 반격을 폈다.

2000년대 들어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과 액정표시장치(LCD) 크기 대결로 경쟁은 옮겨 붙었다. 이 경쟁은 한국 전자산업의 눈부신 성장으로 이어졌다. 양사는 세계 TV시장 1,2위에 올랐다. "국내에서의 치열한 경쟁이 삼성과 LG를 글로벌 강자로 키워낸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가 나올 만한 대목이다.

최근 삼성과 LG는 3D TV 기술 표준을 둘러싸고 다시 맞붙었다. 그러나 경쟁의 양상은 수준 이하라는 평가가 많다. 삼성에서는 "LG는 양심을 버리고 거짓말을 한다,멍청이 같은 ◆◆"라는 발언까지 나왔다. LG(디스플레이)는 이에 대해 "삼성이 이성을 잃었다,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며 내용증명까지 보냈다. 이런 상황을 보면 글로벌 1,2위 회사가 벌이는 안방싸움 치고는 '격이 떨어진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결코 이상하지 않다.

어쩌면 이런 이전투구(泥田鬪狗)는 TV시장이 불황으로 치닫고 경쟁이 치열해진 데 따른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혁신기업은 어려울 때 진가를 발휘한다. 그 무기가 상대를 향한 험구나 자사 제품에 대한 요란한 수사(修辭)여서는 곤란하다.

김용준 산업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