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유럽법인이 21일부터 독일 공장 근무체제를 종전 하루 3교대에서 1교대로 대폭 단축한다. 스페인 공장의 경우 아예 일시적으로 문을 닫기로 했다. 일본산(産) 부품 조달에 차질이 빚어져서다. 클라우스-피터 마틴 GM 대변인은 "아직도 일본 지진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파악하기 어려운 단계"라고 걱정했다.

일본 대지진의 후폭풍이 글로벌 산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부품공급 사슬)에 이상기류가 나타나면서 제2,제3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도요타 소니 등 일본 제조업체들의 경우 공장을 정상화하기까지 수주일 이상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GM 등 자동차업계 최대 피해

댄 애커슨 GM 회장은 18일(현지시간) 사내 공지를 통해 "꼭 필요하지 않은 비용을 줄이라"고 임직원에게 전달했다. 글로벌 소싱을 확대해온 GM은 이번 지진 사태에 따른 충격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한국GM은 21일부터 인천 부평 등 일부 공장의 조업을 단축하는 등 비상경영에 들어갔다.

일본 자동차업계는 거의 패닉에 가까운 충격을 받고 있다. 도요타는 해외 조립용 부품 생산을 일단 21일부터 재개하지만,안정적인 생산을 지속할지 여부는 극히 불투명하다. 회사 관계자는 "협력사 상황을 조사하면 할수록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며 "핵심 부품인 반도체와 석유화학제품,윤활제 등이 문제"라고 전했다. 혼다는 미국 딜러들을 대상으로 5월분 주문을 내지 말 것을 요청했다. 주문을 받아봤자 출고 지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미국 딜러들은 통상 6주 전 주문을 내왔다. 혼다 측은 중국 · 태국 공장에서는 다음달 초,북미 공장에선 다음달 중순,남미 유럽 공장에선 5월 초부터 재고 부족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자동차업계가 지진 사태에 따른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은 단기간 내 부품 대체가 어려운 특성 때문이다. 차량에 들어가는 2만여개 부품 중 하나만 부족해도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해 히타치의 엔진제어장치(ECU) 납품이 늦어지자 닛산은 일본 및 미국 공장을 세운 적이 있다.

◆일본 반도체 "7월 재개할 수도"

일본 내 8개 공장 문을 닫은 소니는 한동안 생산설비를 재가동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부품 부족에다 전력난까지 겹쳐 있다. 미국 경영컨설팅업체인 앨릭스파트너스의 존 호페커 연구원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 수주 정도 계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른 전자업체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일본 최대 배터리 제조업체인 파나소닉은 2개 공장 문을 닫았고,PC 및 가전제품 업체인 후지쓰는 10개 공장이 휴업 중이다. "언제 생산을 재개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는 게 이들 업체의 하소연이다.

반도체 업체인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는 일러야 다음달 중순 생산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분야여서 대체 생산이 불가능한 데다,전원을 복구하더라도 장치 조정 등에 1주일 이상 추가 소요된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설비가 큰 타격을 받았을 경우 생산 재개 시점이 7월께로 늦춰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 업체들이 배터리칩 등의 생산을 2주일 이상 중단할 경우 글로벌 전자업계에 미치는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소니 공장이 2주일만 멈춰도 배터리칩 800만개가 부족해진다"고 전했다.

특히 대만 에이서와 아수스 등 노트북 제조업체들의 충격이 클 것이라는 분석이다. 스코트 린 에이서 사장은 "90% 이상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실리콘 웨이퍼와 접착제의 경우 사재기 조짐까지 일고 있다"며 "향후 2~3개월간 공급 부족이나 가격 급등과 같은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태 장기화 땐 국내 기업 43% 피해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14일부터 4일간 기업 420곳을 대상으로 '일본 대지진에 따른 국내 산업피해 실태'를 설문조사한 결과 "사태가 오래 가면 피해가 예상된다"는 답변이 43%에 달했다고 밝혔다.

피해 유형으로는 대일본 수출 · 매출 차질(58.3%)이 가장 많았다.


◆ 글로벌 소싱

global sourcing.부품 또는 소재 중 일부를 해외 전문업체로부터 조달하는 경영 전략이다. 자사의 핵심 역량을 전략 분야에 집중시키면서 동시에 비용 절감을 추구할 수 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