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독일 다임러는 가솔린엔진을 개발해 2륜차에 실었다.같은 해 벤츠도 2행정 가솔린기관을 완성해 3륜차에 얹었다.각자 창업해 선의의 경쟁을 하던 이들이 합병해 탄생시킨 회사가 다임러벤츠다.이들이 ‘자동차의 아버지’로 불리는 것은 자동차 심장인 가솔린 엔진을 개발해 현대적인 의미의 자동차를 만들었기 때문이다.그로부터 100여년동안 자동차는 눈부시게 발전했다.엔진도 마찬가지.그렇다면 엔진 개발은 이제 완료된 것인가.그렇지 않다.연료를 덜 쓰며 더욱 강한 힘을 내는 엔진을 개발하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수원에 있는 테너지(대표 최재권)도 그중 하나다.테너지는 국내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의 엔진 개발 용역 전문업체다.이 회사는 자동차 종주국 독일과 어깨를 겨루겠다는 포부로 도전하고 있다.


수원시 이의동 차세대융합기술원 자동차연구동.이 안에 들어가면 로비에 각종 엔진들이 전시돼 있다. 양쪽 방에선 다양한 엔진을 개발하고 있다. 또 다른 방에는 각종 엔진이 분해돼 있다. 벤치마킹하기 위한 것이다. 이곳이 바로 테너지가 있는 곳이다.

엔진은 자동차 역사와 더불어 많은 발전을 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아직도 손으로 꼽을 정도다. 정밀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엔진은 수천개 부품의 조합일 뿐 아니라 설계 정밀가공 금속 기계 열역학 등 복합적인 기술을 필요로 한다. 내구성은 기본이며 여기에 연비 효율성 환경보호 등 수많은 요소가 고려돼야 한다.

조금있으니 더부룩한 턱수염의 중년신사가 나타난다. 바로 최재권 대표(55)다. 얼핏보면 예술가처럼 보인다. 충북 옥천 출신의 최 대표는 청주고를 거쳐 서울대 공대에서 학사 · 석사 · 박사 학위(기계설계 전공)를 획득한 전형적인 엔지니어다.

1984년부터 2001년까지 현대자동차에 근무하며 엔진개발실장을 역임했고 독일계 엔진개발 용역업체인 FEV의 한국지사장을 역임한 뒤 2008년 3월 테너지를 창업했다. 테너지는 '테크놀로지 오브 에너지'의 약자다.

그는 현대자동차가 독자 모델 개발을 목표로 마북리자동차연구소를 세웠을 때 설립멤버로 참여했다. 연구소에서의 주요 업무는 엔진 개발이었지만 당시에는 대부분 경험이 없었기에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알파엔진을 개발했다. 글로벌 메이저 3개사(FEV,AVL,Ricardo)와 여러 건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엔진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현대자동차에서 여러 직책을 거친 뒤 엔진개발실장으로 재직하면서 독자 엔진개발에 많은 기여를 했다. 이를 인정받아 2001년에 FEV한국지사장을 맡게 된 것이다. 최 대표에게는 오래 전부터 독자 엔진 개발에 대한 비전이 있었지만 FEV 한국지사장으로 있으면서 그것에 도전하는데 한계를 느꼈다.

최 대표는 "외국계 기업에서는 시장선도국가들만이 개발능력이 뛰어나다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지사 차원에서는 최고의 연구 인력을 동원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독자 엔진 개발에 대한 비전과 도전의식은 더욱 강해졌고 한국의 고급 연구인력들과 함께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는 자신감도 생겨 테너지를 창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엔진은 자동차 핵심 부품이기 때문에 고객들은 엔진개발 프로젝트 발주시 수주실적을 가장 중시한다. 2008년 설립된 신생기업인 테너지는 뚜렷한 실적이 없었다. 하지만 최 대표가 FEV 한국지사장 시절 농기계업계인 국제종합기계와 쌓아둔 개인적인 신뢰가 실적을 쌓는데 큰 힘이 됐다. 당시 국제종합기계는 미국 커민스로 수출해야 할 제품 엔진에 문제가 생겼다. 다른 어떤 회사도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최 대표에게 의뢰가 들어왔고 이를 해결했다.

제품은 커민스의 까다로운 심의를 통과하며 수출에 성공했고 이를 계기로 최 대표와 국제종합기계 간에 더욱 두터운 신뢰가 형성됐다. 이후에도 또 다른 엔진개발 의뢰가 들어왔으며 타사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우수한 엔진 개발에 성공했다. 이를 계기로 업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게 됐다.

최 대표는 "그후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세계 3대 메이저 엔진 개발용역 회사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프로젝트 경합을 벌이는 기회를 획득했다"고 덧붙였다. 그 뒤 테너지는 △산업용 2.4ℓ 및 3.4ℓ 디젤엔진 △신형 승용차모델 2ℓ급 가솔린 엔진 △4단계(Tier 4) 규제를 만족시키는 2.4ℓ급 CRDi 산업용 엔진 △Euro-V 규제를 만족시키는 2.0ℓ 및 2.4ℓ급 가솔린 엔진 개발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를 통해 지난해 매출을 100억원대로 끌어올렸다. 엔지니어링업체의 성격에 비추어볼 때 매우 빠른 성장이다. 최 대표는 "만약 원재료를 사서 완제품을 만드는 제조업체를 기준으로 보면 엔지니어링업체의 매출 100억원은 제조업체 매출 1000억원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엔진 개발은 크게 설계와 시험 개발 두 부분으로 이뤄진다. 평균 6개월 정도 걸리는 엔진 설계는 전체 청사진을 만들어 나가는 기획단계다. 설계를 바탕으로 시험개발이 이뤄진다. 시험개발은 1년~1년반 정도 소요된다. 이 과정에서 엔진 각 부분이 어떤 기능을 담당하는지,성능은 설계대로 잘나오는지,신뢰도는 어떤지 등을 검토한 뒤 개선해 내놓게 된다.

따라서 엔진 설계에 요구되는 기술력보다는 시험개발에 필요한 기술력이 더 중요한 셈이다. 설계과정에서 잘못된 부분들을 시험개발에서 바로 잡기 때문이다. 비용으로 볼 때도 전체 엔진개발 비용 중 설계에 20~30%가량 들고 시험개발에 나머지가 든다.

테너지는 설계와 시험개발을 턴키로 진행하는 형태와 각기 별도로 진행하는 개별 형태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이는 고객사의 요구나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결정된다. 최 대표는 "안타까운 점은 아직까지 한국 업체는 엔진설계역량이 부족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어 설계프로젝트를 수주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테너지는 '최고의 인재를 토대로 최고의 기술을 개발한다'는 모토를 갖고 있다. 기술집약형 중소기업이어서 전체 직원 50명은 대부분 대졸자이며 이 가운데 석 · 박사가 절반이 넘어 58%에 이른다.

최 대표는 "장기 비전은 엔진의 개발에 필요한 독자 설계,시험 개발,차량 애플리케이션 등 엔지니어링 전과정에 대한 토털 솔루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리더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로서는 국내 프로젝트 수주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역량을 키워 앞으로는 해외시장을 적극 공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 자동차가 지금처럼 세계 시장에서 위상을 높여간다면 머지 않아 테너지의 인지도도 올라가고 엔진개발 기술력을 더욱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테너지는 CO₂저감과 배출가스 저감 등 환경기술과 자동차산업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을 지향하는 엔진개발전문 엔지니어링 회사인 만큼 앞으로 독일 기업과 이 분야에서 당당히 어깨를 겨루고 싶다"고 말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