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은 편지의 대가였다. 수많은 편지는 그의 개인적 면모와 행적을 낱낱이 드러낸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핵무기 제조를 부추겼다고 알려진 것도 편지 탓이다. 편지는 이렇게 무섭다. 편지는 흐려지고 잊혀진 기억을 되살려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남는다.

가짜 편지 소동도 그래서 생긴다. 실제 신정아 씨 학력위조 사건 당시 검찰 간부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과 주고 받은 이메일에 "매우 사적이며 노골적인 내용도 담겨 있다"고 말한 뒤 클림트의 '키스' 운운하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의 가짜 연애편지가 등장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유서에 발표된 것과 다른 내용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2009년엔 생전의 편지는 물론 '손이 떨려 글을 쓸 수가 없다. 내일 아침 뉴스를 보고 너무 놀라지 마라.5월 23일 노무현'이라고 쓰인 가짜 유서까지 만들어 사기 행각을 벌인 인물이 검찰에 적발됐다.

장자연 편지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 감정 결과 가짜로 밝혀졌다는 소식이다. 장씨와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전씨는 장씨를 알지도 못했고,편지는 전씨가 언론에 공개된 고인의 자필 문건을 보고 필적을 연습해 만든 허구라는 것이다.

인터넷 상엔 국과수 발표도 믿지 못하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짜인 걸까,가짜여야 하는 걸까'라는 식이다. 어쨌거나 경찰은 편지가 가짜인 만큼 재수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고인은 두 번 죽고,행여 다시 불려다닐까 떨던 이들은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리게 생겼다.

장씨 사건의 경우 들춰내 봤자 좋을 것 없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을지 모른다. 돈과 힘을 이용해 고인을 희롱했다는 이들도 그렇고,비슷한 일을 당했다는 연예인 지망생들도 더 이상 상처를 들쑤시지 말고 그만 묻어버렸으면 하고 바랄 수 있다.

사건의 본질은 편지의 진위가 아니라 일부 지도층의 권력 남용 및 부적절한 성(性)에 대한 무감각이다.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짓을 알고 있다'는 식의 불륜 사실 폭로 협박 한마디에 수백만원씩 부친 공무원이 부지기수라는 것만 봐도 그렇다.

진실은 밝혀지고 죄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편지가 가짜란다고 "그럼 그렇지, 편지는 무슨" 하는 이들이 있다면 다시 생각할 일이다. "별 것 아닌 일을 갖고"라며 웃어넘기며 파렴치한 짓을 계속하다간 언젠가 도저히 발뺌할 수 없는 편지가 나타날 테니.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