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프린스턴대 연구실에서 앨런 블라인더 교수를 만났을 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미 재정적자의 해결책을 물었다. 복잡한 경제 현안에 대한 명쾌한 해법을 제시해왔다는 평가를 받는 경제학자이지만 "'마술 지팡이(magic wand)'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방치할수록 상황이 악화된다는 점에는 이론이 없지만 정치적 이해가 엇갈려 실마리를 찾기가 어려울 것이란 진단이었다.

그의 지적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표를 의식해야 하는 당파성이 문제다. 미 재정적자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치적으로 가장 큰 수혜를 본 게 공화당이다. 그저 오바마 정부가 집행하려는 예산안마다 '아니요(no)'만 외치면 표가 몰렸으니 말이다. 큰 정부에 반대하는 티파티 운동까지 가세해 공화당은 작년 말 중간선거에서 손쉽게 하원을 장악했다. 공화당의 존 보에너 하원 의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일자리를 죽이는 정부 부양책(job-killing government spending)'이라고 오바마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2주짜리 산소호흡기(잠정 예산안)로 연방정부 폐쇄사태를 간신히 막고 부채 한도 증액을 놓고 정부와 공화당이 맞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공화당이 2012년 대선에서도 재정적자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재미를 계속 볼지는 미지수다. 경기 침체 탓이라고는 하지만 정치권의 신뢰 상실은 심각한 수준이다. 작년 12월 갤럽 조사 결과 국민들의 미 의회 신뢰율이 13%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최악이다.

미국민들의 의식도 문제다. 대다수 미국인들이 재정문제를 풀기 위해 신속하고 과감한 예산 삭감을 찬성한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1월 리서전트리퍼블릭 조사에서도 세금을 덜 내면서 재정적자를 해결하길 바라는 국민들의 의식이 잘 나타났다. '정부가 국민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고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한다'는 응답 비중이 49%에 달했다. 민간이 할 수 있는 부문은 민간 혹은 개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반응(46%)보다 오히려 높게 나타났다. 오바마 정부를 비판하면서도 엉클샘이 산타클로스로 계속 남아 주길 바라는 심리가 팽배하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인들 재정적자 문제해결의 관건인 연금과 메디케어(공공의료보험) 개혁 카드를 꺼내겠는가.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니 해외지원금을 줄이는 등의 지엽말단적인 예산감축안을 만지작대면서 변죽을 울리고 있다. 오바마 정부와 민주당은 예산 삭감을 주장하는 공화당이 연금 문제를 적극 제기해 주길 바라는지 모른다.

취임사에서 괜찮은 임금의 일자리를 얻고 품위있는 은퇴를 할 수 있는지 여부로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심판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오바마 대통령이 선뜻 연금 개혁을 주창하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정부 역할을 지나치게 크게 잡아 재정 개혁의 발목을 스스로 묶어버린 셈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정부의 역할로 치면 역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정의가 현실적이다. 정부는 시민의 '기초생활(basic standard of living)'을 보장하고 시장이 실패했을 때만 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비용을 따져서 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수입 범위에서 지출하겠다는 원칙을 강조할 게 아니라 정부의 역할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 수위를 낮추면서 연금 개혁을 2012년 대선 이슈로 삼아야 한다. 재선에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상황이 어려운 때일수록 지도자는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

이익원 뉴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