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의 위기가 여러 각도로 조명을 받고 있지만,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중소기업의 위기'다. 지난해 일본 중소기업청이 발표한 '중소기업백서'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1990년 이후 100만개 이상 사라졌다. 1990년 532만개였던 중소기업이 2006년 420만개로 감소했다. 전체 중소기업의 21%에 해당하는 112만개가 문을 닫은 것이다.

교토의 벤처기업 등 기술력이 뛰어나고 글로벌 경영을 하는 중견 · 중소기업은 선전하고 있지만,내수 중심의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평균 7만개가 무너지고 있는데 이런 추세라면 작년에는 400만개 이하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기자가 도쿄에 있는 일본 중소기업청을 찾아가 일본 관료들에게 그 까닭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들은 크게 네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했다. 첫째,'잃어버린 10년'의 장기 불황이다. 불황이 심화되다보니 대기업의 주문이 끊기고 기계 작동이 멈추는 것이다. 문제는 이 불황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둘째,중국과 한국 기업의 맹추격이다. 전자 통신 기계 등 기술력 있는 분야는 한국 기업이,섬유 봉제 완구 등 노동집약적인 분야는 중국 기업의 추격에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셋째,사업다각화 실패다. 경쟁력을 잃은 전통 산업의 경우 재빨리 변신할 수 있어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친 기업들이 많다. 넷째,가업 승계 곤란이다. 일본 젊은이들은 제조업을 이어받기 꺼린다. 인력확보 기술개발 마케팅 등 골치아픈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일본 중소기업청은 기업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금 인력 기술개발 사업전환 등 다양한 지원정책을 쓰고 있다. 하지만 경제 전체가 불황에 빠짐에 따라 밑바닥을 형성하는 중소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국내 중소기업은 304만여개(2008년 기준)에 이른다. 2007년에 비해 2000여개가 줄어들었지만 감소폭이 0.1%도 안된다.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다.

우선 중소기업 가동률이 10년째 70% 안팎에 머물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 1월 평균가동률은 72.0%로 3개월 연속 떨어졌다. 정상가동의 기준 수치인 80%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채산성 악화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이 많다는 점이다. 원부자재 가격이 속속 오르는데 남품가격에 반영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중소기업인들은 "열심히 공장을 돌리면 돌릴수록 적자폭이 커진다"고 하소연한다. 중국의 추격이나 사업다각화 실패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많은 것도 비슷하다.

정부는 최근 기술집약기업의 창업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 바람직한 정책이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기존 업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중소기업 트렌드는 일정 시차를 두고 한국에 비슷하게 나타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과 이스라엘의 중소 · 벤처기업들이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제패하는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기술력과 글로벌 경영으로 승부한다는 점이다. 반면 내수에 안주하고 모기업의 발주만 기다리는 중소기업은 '불황과 함께 사라진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이를 감안해 중소기업의 탄탄한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내실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김낙훈 中企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