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는 분과 요즈음 국내 전셋값이 오르는 데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은 법조계에서 일하는 분이어서 계약 형태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에 주택 임대를 월세 계약으로 전환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했다. 이 관찰은 상당히 흥미로운 것으로 생각된다.

얼마 전 발표된 정부의 전세 대책 중 공급 증대는 시간이 걸리고 전세자금 대출 지원은 가계 부채를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시장의 반응도 시원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월세 제도 장려와 함께 영세민에 대한 직접적인 월세 지원 등을 통해 가계부채의 증가 없이 전세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전세 계약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주택 임대제도다. 예전에 전세 계약을 외국 경제학자들에게 설명할 때 그들은 이 제도를 이해하기 힘들어 했다. 전셋값이 오르는 것은 다른 편에서 본다면 집값이 내려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1억원을 내고 산 집이 2년 뒤에 8000만원밖에 되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그렇다면 사람들은 2년 뒤에 2000만원을 손해보게 되므로 당연히 1억원을 내고 집을 사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집을 1억원에 전세를 살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전세 사는 사람은 집값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계약이 끝나면 1억원을 돌려받게 된다. 따라서 집값이 하락할 가능성이 큰 경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집을 사기보다는 전세를 살고자 하고 전셋값이 오르게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통화당국은 기준 금리를 낮게 유지했는데,이로 인해 집주인들이 떨어진 수익성을 상쇄하기 위해 더 비싼 전셋값을 요구한 것도 한 요인이다.

그런데 전세 제도는 주거 공간을 거래하는 데 있어 그리 좋은 제도는 아니다. 만일 집값의 변화가 크지 않다고 예상된다면 전세금은 집을 사는 값과 거의 비슷해야 하는데 집을 살 정도로 돈을 모으지 못한 사람들,예를 들어 사회초년생이나 해외에서 들어온 사람들에게 이는 너무 큰 액수이다. 따라서 전세금을 모아놓지 않은 사람은 어느 정도의 소득이 있더라도 집을 임차하기가 어려워진다.

또한 전세는 주택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집값이 오르리라고 기대되는 국면에서 전세제도는 집을 살 돈을 갖지 않은 투기수요자들이 집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준다. 전셋값이 집값과 비슷할 경우 자기 돈이 없더라도 집을 사서 전세를 주면 집값을 치를 수 있으므로 앞으로 오를 집값으로 인한 수익을 노리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다. 따라서 너도나도 집을 사려 들어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

이에 비해 월세 계약은 집을 사용하는 데 대한 사용료를 내게 되므로 공간에 대한 수요와 공급을 보다 정확히 반영할 수 있고 투기로 인해 가격이 왜곡될 가능성이 적다. 집값이 오른다고 살지도 않을 빈 집을 월세로 빌릴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월세 소득을 얻기 위해 주택을 사려는 사람은 자신이 모아 놓은 돈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돈이 없이 투기를 하려는 사람들은 많은 돈을 빌려야 하므로 투기에 참여하기가 어려워지고 집값 안정에도 기여하게 된다.

따라서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전세보다 월세를 활성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문제는 세입자들이 소득 중 일부를 다달이 월세로 내는 데서 오는 부담이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월세는 1억~2억원이 넘는 목돈인 전세금을 안 내도 되는 것이므로 이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책이 마련된다면 어느 정도 월세의 부담을 덜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전세 살던 사람이 월세로 전환할 경우 자금 운용을 세입자가 하게 되므로 이에 대한 금리를 우대해주는 방안 같은 것도 검토할 만하다.

이인호 < 서울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