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률이 높지 않아도 되니까 안정적인 주가연계증권(ELS)이 나오면 알려주세요. 주식은 당분간 쉬어야겠습니다. "

서울 삼성동의 한 증권사 프라이빗뱅킹(PB)센터에서 근무 중인 L팀장은 지난 24일 센터를 찾은 고객 K씨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K씨는 일본에 이동통신 관련 제품을 수출하는 중견기업 오너다. 그는 리비아사태가 불거지기 전인 이달 중순까지만 해도 증시 조정을 저가 매수 기회로 삼아 10억원가량을 투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리비아사태 이후 하루 이틀 고민하더니 휴식을 전격 선언한 것.

리비아발 증시 조정에 강남 '큰손'들의 주식 투자심리가 꽁꽁 얼어붙고 있다. 그 대신 비교적 안전한 ELS나 딤섬펀드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한발 앞서 수익성 높은 투자처를 찾아온 이들이 주식 투자에 멈칫하는 움직임이 나타남에 따라 일각에서는 이번 조정장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개별 종목 투자는 노(No)!

"최근 2~3일 새 수억원 규모로 개별 종목에 투자한 사례는 거의 없다"(김은정 현대증권 서초 부띠끄모나코지점장)는 게 강남권 PB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입주민들을 주로 관리하는 강우신 기업은행 강남PB센터장은 "24일 하루 동안 10여명의 부자 고객들과 접촉했는데 모두 '개별 종목 신규 투자는 당분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전했다.

신혜정 우리투자증권 프리미어블루 강남2센터장도 "20일 이전까지만 해도 증시 조정을 저가 매수의 기회로 삼아 증시에 수억원씩 신규 투자하는 고객이 일부 있었지만 이번 리비아사태를 기점으로 투자심리가 급속히 위축됐다"고 말했다.

◆안정성 높인 ELS 인기

ELS를 찾는 부자들은 여전히 많았다. 수익률에 대한 '눈높이'가 낮아진 대신 안정성 높은 상품에 대한 투자 욕구가 커진 게 특징이다. 서울 서초동의 한 증권사 PB센터장은 "녹인(knock-in · 손실발생 가능) 조건을 없애 안정성을 높인 노 녹인(no knock-in) 상품의 인기가 높다"고 밝혔다.

이 센터장은 "만기가 돌아온 정기예금에서 뺀 5억원을 최고 연 10%대 수익률을 목표로 하는 노 녹인 ELS에 한꺼번에 투자한 사례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안정적인 ELS에 대한 투자열기는 공모시장에서도 확인된다. 우리투자증권이 이달 22~24일 판매한 6종의 ELS 상품 가운데 150억원 한도에 2.09 대 1로 최고 경쟁률을 기록한 ELS4009호는 기초자산의 상환평가 가격이 기준가격 대비 40% 미만으로 빠지지 않으면 최고 연 10%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상품이다.

우리투자증권 관계자는 "4009호를 제외한 나머지 5종의 경우 수익률은 연 12~15%로 높지만 녹인 구간이 55~60% 미만으로 높아 안정성은 떨어지는 상품이었다"며 "이들 상품은 모두 100억~200억원인 판매 한도를 채우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강남권 PB센터들도 ELS를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 49명까지 희망자를 모아 투자계를 결성한 뒤 상환 조짐이 보이면 곧바로 새 ELS상품을 내놔 쉬는 기간 없이 ELS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특판 형태로 일정 기간만 판매하므로 투자를 하고 싶어도 쉴 수밖에 없는 일반 판매 방식의 약점을 보완한 서비스다.

◆대안투자는 딤섬본드로

안정적인 수익률을 올릴 수 있어 연초부터 강남 부자들에게 인기를 모으고 있는 딤섬본드 투자상품은 리비아사태 이후에도 여전히 인기다. 다만 환차익에 대해 비과세되는 신탁상품의 인기가 15.4%의 세금을 떼는 펀드보다 더 높다. 이상수 신한은행 서초PB센터장은 "절세상품은 언제나 강남 부자들의 인기 투자 아이템"이라며 "전체 자산의 5~10% 정도는 딤섬본드 투자상품에 가입하는 고객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

◆ ' 노 녹인' ELS

no knock-in Equity Linked Securities.주가연계증권(ELS)은 개별 주식의 가격이나 주가지수의 움직임에 연계해 수익이 결정되는 장외파생상품이다. 상품 설계에 따라 손실 발생 여부,기대수익률 등이 다르다. 노 녹인 ELS는 원금손실 조건을 없애 안정성을 높인 게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