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과 북아프리카를 뒤덮은 '재스민 향기가 중국에까지 퍼질 기미가 나타나 민주화 요구 시위가 본격화될 것인지에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비록 기도 수준에 머물렀다는 평가도 있으나 중국 공안당국의 집중적 인터넷 검열과 삼엄한 거리 통제 속에서도 20일 대낮 베이징과 상하이 번화가에서 사실상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이 향후 중국의 정치사를 가를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는 말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이번 시위는 최근 중국 인터넷에서 '중국의 재스민 혁명'이라는 제목의 선동글이 돌기 시작하면서 예고됐다.

미국에 서버를 둔 중국어 웹사이트 보쉰(Boxun.com)에 처음 게제된 후 중국에 퍼진 이 글은 해외에서 활동 중인 중국 민주화 운동가들이 유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글은 20일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12개 주요 도시의 번화가에서 민생과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자고 제안했는데 결과적으로 베이징과 상하이 두 도시에서 부분적 성공을 거둔 셈이 됐다.

20일 오후 베이징의 대표적 번화가인 왕푸징(王府井) 맥도널드 앞에서는 공안이 대거 배치된 가운데 수백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들 대부분은 뜻밖의 소란을 보고 모여든 구경꾼들이었지만 한 젊은 남성이 '재스민'을 상징하는 듯한 흰 꽃을 바닥에 내려놓는 행동을 하다 연행됐고 '먹을 것을 원한다'며 공안에 욕설을 퍼붓던 한 노인도 현장에서 체포되는 등 긴장된 분위기가 연출됐다.

상하이 중심가인 인민광장 스타벅스 앞에서는 정부와 치솟는 물가를 비판하는 구호를 외치려던 청년 3명이 경찰과 언쟁 끝에 연행됐다.

이런 모습에 '재스민 시위'의 성공 여부를 두고 평가가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구경꾼만 잔뜩 몰렸을 뿐 공안의 삼엄한 통제 탓에 구호를 외치는 등 제대로 된 시위는 벌어지지 않았다면서 '기도 수준'에 그쳤다는 평이 나온다.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 지도부가 집단 거주하는 '권부의 중심'인 중난하이(中南海) 코앞인 왕푸징에서 예고된 시위가 버젓이 열렸다는 점에서 1989년 천안문 사태 후 20여년 만의 본격적인 민주화 시위 촉발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20일 시위의 성공 여부를 떠나 중국에서 '재스민 시위'를 둘러싼 긴장 상태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하는 분위기다.

이번 시위를 선동한 글은 20일 시위가 성공하지 못할 경우 다음 일요일인 27일 같은 장소에서 시위를 벌이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록 중국의 주요 매체들은 이번 시위 사태를 보도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4억에 달하는 네티즌들을 통해 소문이 알음알음 퍼져나가는 것까지 막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따라서 27일 얼마나 많은 중국인들이 '재스민 시위' 대열에 합류할지가 이번 사태를 가를 중대 기로가 될 전망이다.

한편 이번 시위는 노벨상 수상자인 류사오보(劉曉波)가 2008년 주도했던 `08헌장(Charter 08)' 발표 때와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류샤오보 등 민주화 인사들은 세계인권선언 채택 60주년을 맞아 언론자유 보장, 인권 개선, 자유 선거 등을 요구하는 08헌장을 발표했지만 당시는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다.

이번 시위는 빈부격차, 치솟는 물가와 집값 등 경제 발전의 그늘 속에서 신음하는 기층 민중을 동요할 수 있는 요소를 공격점으로 삼고 있어 잠재적 파급력이 크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중국식 마이크로블로그인 웨이보(微博)으로 상징되는 인터넷 소통 도구의 발전으로 정부의 일방적인 여론 통제력은 2008년에 비해 크게 약화됐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강력한 공권력을 갖춘 중국 당국은 서구식 민주화 요구의 싹을 초기에 잘라 버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테세여서 중동과 같이 시위가 급속도로 확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여전히 강하다.

홍콩의 인권단체인 '중국 인권민주화운동 뉴스센터'는 19∼20일 민주화 운동가 1천명 이상이 중국 각지에서 당국에 연행되거나 가택연금됐다고 전했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19일 전국의 성(省)과 중앙부처의 주요 간부들을 모아놓고 사회관리체계 확립을 강조하면서 돌연 인터넷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라고 주문한 것은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가 도화선이 된 최근 중동 사태 전개에 관한 중국 지도부의 우려 섞인 인식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동덕여대 중국학과 이동률 교수는 "외국에서는 기대치가 높을 수 있지만 중국에서는 공권력에 비해 저항운동 세력의 조직력이 약하다"며 "민주화 운동을 할 수 있는 지식인과 중간계층 가운데 공산당 체제 속에서 수혜자가 더 많아 아랍권에서 일어난 재스민 혁명이 일어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에서의 민주화 요구 바람이 북한에도 전해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진다.

중국의 민주화 열기가 거세질 경우 이 같은 소식은 북중 접경을 통해 신속히 북한에도 전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북중 접경지역의 북한 주민 가운데 상당수가 변경 무역 등을 이유로 중국 휴대전화를 갖고 수시로 중국 쪽과 통화를 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주요 뉴스가 신속히 전파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자국의 생존을 위해 정치, 경제적으로 전적으로 기대고 있는 '사회주의 형제국' 중국에서 민주화 시위가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면 북한 주민들에게 줄 심리적 충격은 구소련 붕괴에 버금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베이징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setuz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