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철권통치를 휘둘러온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퇴진이 가시권에 들어왔다.지난달 25일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지 17일만이다.

AP통신은 이집트 군과 집권당 간부들의 말을 인용해 무바라크 대통령이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해 퇴진의사를 조만간 밝힐 것이라고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AFP통신은 “이집트 군이 국가를 보호하고 국민의 적법한 요구를 지지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무바라크 시위대에 결국 굴복

무바라크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압박과 갈수록 격렬해지는 시위속에서도 권좌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지난 9일에는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외국 외교사절을 접견하며 오는 9월 예정된 대선까지 잔여임기를 채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런 무바라크가 퇴진을 결심한 것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위기감에 따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이집트에서는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참가자들이 반정부 시위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또 11일 금요 기도 뒤에는 100만여명이 모이는 거리집회가 계획되는 등 반정부 시위는 더욱 격화되는 양상을 보였다.정부는 이에 맞서 군을 투입한 무력진압 가능성까지 거론,대규모 유혈사태까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8일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시작된 파업은 이날 철도,버스,섬유,철강 등 산업전반으로 번졌다.카이로 국영 전기회사 직원 수백명은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고 버스회사 5곳의 운전기사들도 24시간 버스 운송을 중단하고 파업에 동참했다.박물관 직원 및 섬유 공장 노동자 수백명도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수에즈 운하에서도 이틀째 파업이 이어졌다.수에즈 운하 내 선박수리공 5000여명은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AFP통신은 “인근 주민 300여명이 주택 부족에 항의하며 정부청사에 불을 질렀다”고 전했다.그러나 이날까지 수에즈 운하의 통행은 별다른 차질이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카이로 알 타흐리르 광장에선 시위 발생 이후 최대규모인 25만여명의 시위대가 몰렸다.반정부 시위 지도자들은 금요 기도가 열리는 11일을 ‘무바라크 심판의 날’로 규정,카이로에서 100만여명이 집결하는 시위를 열자고 촉구했다.시위가 시작된 지난달 25일 이후 금요예배는 이집트 사태의 분수령이 됐다.지난달 28일에는 전국적으로 수십만명이,야권이 ‘무바라크 퇴진의 날’로 선언한 지난 4일에는 100만여명이 시위를 벌였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

오락가락한 우방국들의 지원도 퇴진의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무바라크의 우방인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국왕은 이날 또 다시 전화로 사태해결을 논의했지만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미국은 지난 주말에는 무바라크의 즉각 퇴진을 압박했다가 지난 7일부터는 점진적 개혁을 지지했다.이날은 또 즉각적인 개혁을 주장하고 나서는 등 중심을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바라크가 권좌에서 물러날 경우 과도기적 통치권은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넘어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그러나 술레이만에게로 권력이 이양된다 하더라도 당분간 갑작스런 변혁은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술레이만은 점진적인 개혁을 주장해왔다.이집트 정부는 최근 개헌위원회를 설치하고 공직부패와 선거부정에 대한 조사를 약속하는 등 개혁안을 추가로 제시했다.또 공공부문의 임금 인상과 정치범 석방 등 민심 달래기에 나선 상황이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