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세자와 납세자가 더 거두고 덜 내기 위해 머리싸움을 벌이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고대 이집트 문명의 비밀을 푸는 단서가 된 로제타 스톤도 세금에 대한 불만의 산물이란 설이 있다. 그 내용은 왕실과 국민들 간의 단합을 호소하는 것이지만 실은 이집트를 지배하던 그리스인들이 무거운 세금을 물리자 일어난 반란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다. 기원전 196년 궁지에 몰린 프톨레마이오스 5세가 밀린 세금 면제를 약속하고 '칙령' 형태로 남긴 증표라는 거다.

역사의 획을 그은 사건도 세금과 연결된 경우가 많다. 미국 독립전쟁은 영국의 불공평한 세금정책에 반발한 보스턴 차 사건에서 비롯됐다. 과도한 세금 징수에 반발한 북아메리카 주민들이 인디언으로 위장해 영국 배에 실려 있던 면세품 홍차 상자들을 보스턴항 바다에 던졌던 것이다. 근대 헌법의 토대가 된 영국의 대헌장도 존 왕이 무리한 세금을 물렸다가 귀족들의 반발을 산 게 발단이 됐다고 한다. 이는 나중에 의회의 승인 없이는 과세할 수 없다는 원칙으로 발전했다.

세금을 피하려다 보니 여러 탈세 수법이 나왔다. 가장 고전적 수법은 세리에게 뇌물주기,소득 일부만 신고하기,타인 명의로 소득 빼돌리기 등이다. 근래에는 IT산업 발전과 금융거래기법 진화，국제거래 증가로 인해 '첨단 탈세'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선물 옵션 스와프 등 파생상품을 이용한 탈세,인터넷 대부업이나 전자상거래를 위장한 탈세가 대표적이다. 신종 장비로 계약서를 정교하게 위 · 변조해 세금을 피하는 행위도 적지 않단다. 전자화폐 사이버머니 등으로 변칙거래하면서 탈세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국세청이 첨단 탈세와의 전쟁에 나섰다. 본청과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지방청에 첨단탈세방지센터(FAC)를 설치해 8일 가동했다. 전통 세무조사 기법엔 한계가 있는 만큼 전문성을 강화해 철저하게 증거 위주로 탈세를 잡아낼 계획이란다. 국세청 CSI(과학수사대)인 셈이다.

새나가는 세금이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지만 탈세 유혹을 뿌리치긴 쉽지 않다. 현금을 내면 할인해주는 업소가 여전히 많은 것만 봐도 그렇다. '세금을 제대로 내는 사람은 정직하거나 멍청하거나 월급쟁이'라는 우스개까지 있을 정도다. 탈세방지센터를 효율적으로 운영해 세수를 늘리고 상대적 피해자도 줄여나갔으면 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