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미술과 문화를 주제로 한 모임이 앞다퉈 생겼다. 대학교,박물관 그리고 사설단체에서 주관하는 문화최고위과정과 교양 강좌,각종 소모임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더욱 많다. 수강생의 면면을 보더라도 이전에는 주부들이 여가시간을 활용해 교양을 넓혔다면 지금은 기업체와 금융기관 최고경영자(CEO) 및 임원,기관장들이 적극 참여하고 있다.

21세기가 문화의 시대이고 문화가 경쟁력이라는 시대의 코드를 남들보다 부지런한 그들이 읽어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추세를 반영이라도 하듯 미술전시회를 찾는 관람객의 수도 대폭 늘었다. 작년 국제 규모로 개최된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는 6일 동안 7만2000명의 관람객이 찾았고 지금 한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에는 두 달 동안 27만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한편 작년에 1인당 국민소득이 2007년 이후 다시 2만달러를 넘어섰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국민소득 2만달러는 미술시장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문화시장이 본격적으로 커나가는 출발점이 되는 의미 있는 숫자라고 생각된다. 미국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달성했던 1980년대 말부터 갤러리,미술관,경매회사 그리고 정부기관의 예술 지원 및 기업 컬렉션 등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미술시장 발전을 견인하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

영국도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이던 1997년에 토니 블레어 총리가 21세기 유망산업인 문화를 아이템으로 하는 업종(디자인,건축,영화,패션,게임,미술 등)을 창의 산업으로 규정하고 이를 진흥시키기 위해 각종 정책을 폈다. 이 결과 데미안 허스트를 정점으로 한 yBa(young British artists)들은 세계적인 작가가 됐고 런던은 세계 미술시장의 한 축이 됐다.

세계적 컨설팅사인 캡제미니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2009년 기준 순자산 100만달러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부유층 규모가 12만여명에 달한다. 국내 한 금융기관의 조사 결과로는 2006년 500만원 이상 명품구매자 수가 16만명에 달했다. 우리나라도 소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미술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도가 커졌지만 미술품 소장가 수는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미술품하면 몇 천만원,몇 억원대의 고가 작품만을 머리에 떠올리고 있다. 하지만 작년 우리 회사에서 거래된 작품 중 절반 정도는 500만원 이하다.

스위스 바젤아트페어를 보러 갔을 때 일이다. 바젤시와 인근 지역 호텔 모두가 관람객들로 예약이 다 차서 민박을 했다. 민박집에는 소박한 소장품이 많았다. 포스터,판화,드로잉 등 고가 작품은 아니지만 집주인의 취향을 알 수 있는 소장품들이 가득했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아이들 생일 때 작품 한 점씩을 선물한다. 주로 아직까지 저렴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다. 내가 그 집에 놀러 가보니 아이들이 작품에 대해 자기 느낌을 말하는데 나름의 평론가가 돼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엉뚱한 평론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 순간 가족들이 행복해 보였다.

이학준 < 서울옥션대표 junlee@seoulauctio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