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신대륙에 처음 알려진 건 석 달이 지나서였다고 한다. 그나마도 첫 소식이 그랬다. 아메리카 구석구석까지 퍼지는 데는 그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렸다. 예컨대 아이티로 전파된 데는 1년 이상 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티의 독립운동가 루베르튀르의 노예해방운동이 시작(1790~1791년)된 시점을 고려해볼 때 그렇다. 어떤 경로로든 대혁명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신대륙의 대사건,링컨 피격이 유럽에 전해지는 데는 보름쯤 걸렸다는 분석이 있다. 1865년의 이 뉴스는 최신식 증기선이 전해줬다. 당시로는 대서양을 건너는 가장 빠른 수단이었다. 76년 새 정보이동은 6배쯤 빨라졌다.

근대 이전에는 정보의 이동 속도가 더 느렸다. 가령 일본소설 '대망'을 보면 도쿠가와가 스페인 선교사에게서 여왕의 통치와 신문물을 전해듣는 장면이 나온다. 역사적 고증을 거친 내용으로 여겨진다. 상당한 시차가 불가피한 시대의 대면(對面) 정보다. 시대를 거슬러갈수록 인적 교류는 적었다. 자연히 다른 세계의 소식,뉴스의 전파도 느렸다. 정보의 이동량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외부 정보는 소수 지배층이 독점했을 것이다. 그것이 힘이었고,권력이었다.

시대는 변해 21세기다. 군데군데 정보의 오지가 없지 않지만 드넓은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좁은 지구촌이 됐다. 말 그대로 유비쿼터스(언제나,어디서나) 뉴스 시대다. 정상적인 개방 국가라면 나라 안팎의 실시간 뉴스흐름은 너무나 당연하다. 지난 연말,남극해에서 제1인성호 침몰 때도 그랬다. 지구 정반대쪽 먼 바다 한가운데였지만 상황은 생중계되다시피 했다. "지금 가라앉는 중…" 배가 채 잠기기도 전에 한국인은 몇 명,외국인 선원은 또 몇 명이란 사실까지 파악된다. 국제부 데스크만 보는 뉴스가 아니다. 정부만 접하는 정보도 아니다.
튀니지의 재스민혁명이 이집트로 옮겨가는 과정도 그렇다. 세계가 카이로 도심상황을 사실상 실시간에 본다. 동시에 미국 백악관의 대책회의를 지켜본다. 이스라엘 총리 논평도 즉각 듣는다.

지구촌이 동일뉴스대다. 국제뉴스,국내뉴스 구별이 어려워진 것도 지금의 특징이다. 경제기사,비경제기사 분류가 무의미해진 것과 같다. 덕분에 불편한 일도 생긴다. 최근 코코아값 급등이 그런 예다. 코트디부아르의 정정 불안이 주요 원인이었다. 아프리카의 오지,이 빈국의 대선 결과 전직과 새 당선자 두 대통령이 공존하며 싸우고 있다. 이 바람에 코코아 해외선적에 차질이 생겼다. 세계 생산의 40%를 차지하니 초콜릿 값이 오르는 건 자연스런 수순이다. 현지 상황이 그대로 전해지면서 가수요에 투기가 얽혀 오른 가격을 더 올린다. 가격예측은 한층 어려워진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부작용이다.

카이로 거리 정황이 국제유가 변수로 이어지고 곧바로 증시에 반영되는 것도 그렇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부작용보다는 이점이 많다. 국제화와 세계화,개방은 스스로 속도를 낸다. 이런 물결을 적극 타며 우리는 개방경제를 택했다. 무엇보다 경제적 성취를 노린 것이었지만 민주주의까지 가능케 해 줬다.

이집트의'코샤리 혁명'도 한편으론 그런 과정이다. 사회발전,정치발전에 뒤늦게 나선 것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이집트는 대혁명의 프랑스와는 222년 격차로,4 · 19의 한국과는 51년 차이로 뒤따라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북한의 극소수 권력자들이 이집트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지,무척 궁금하다.

허원순 국제부장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