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실명제 사이트 선정 앞두고 고심

소셜 댓글의 거센 바람속에 악성 댓글 예방을 명목으로 도입된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가 사문화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소셜 댓글이 실명제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릴 경우 굳이 실명제 대상인 일반 댓글을 운영하지 않는 대신 소셜 댓글을 적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현재 방통위는 실명제 대상 웹사이트 선정을 앞두고 소셜 댓글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할 처지에 놓여있다.

특히 반년 만에 정부 부처 블로그 및 주요 언론, 기업 등 110여개 사이트에 도입된 소셜 댓글의 확산 속도를 고려할 때 중장기적으로 사실상 소셜 댓글이 일반 댓글을 대체해 실명제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소셜 댓글은 실명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자신의 트위터나 미투데이,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와 연개해 글을 올리는 서비스다.

1일 방통위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방통위는 매년 2월초 한해 실명제 대상 웹사이트를 선정한다.

적용 기준은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동안 하루 평균 이용자수 10만명 이상인 사이트다.

지난해에는 2월2일 실명제 적용 대상 웹사이트 167개가 선정됐다.

실명제 대상 사이트로 지정되면 주민번호 및 아이핀 등을 회원 가입을 한 뒤 실명으로 댓글 등의 게시글을 올려야 한다.

문제는 이 같은 시점에서 방통위가 실명제 적용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해온 소셜 댓글에 대해 여전히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실명제 대상 사이트에 포함된 IT전문지인 블로터닷넷이 지난 7월 소셜 댓글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블로터닷넷은 기존 회원 가입없이 댓글을 남기는 방식을 실명제 방식으로 바꾸어야 할 상황에서, 기존 댓글 방식을 폐지하는 대신 소셜 댓글을 도입했다.

결국 반년 이상 판단을 미뤄온 방통위가 소셜 댓글을 실명제 적용 대상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는 한 제2, 제3의 '블로터닷넷'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해 스마트폰 시대의 개막과 함께 트위터 및 페이스북 가입자가 급증해 사실상 일반 댓글을 조만간 넘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사실상 실명제가 사문화될 수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방통위가 섣불리 소셜 댓글에 대해 실명제 위반 결정을 내리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실제 방통위는 지난해 법무법인 4곳에 소셜 댓글에 대한 실명제 위법 여부를 문의한 결과 의견이 갈린 것으로 확인됐다.

2곳의 법무법인은 소셜 댓글은 트랙백 서비스 등 신규 댓글 서비스인 만큼 법리적으로 게시판에 해당돼 실명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나머지 2곳의 법무법인도 소셜 댓글이 게시판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악성 댓글을 막기위해 도입된 실명제의 법적 취지 및 규제의 실효성을 고려할 때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방통위가 지난해 실명제에 대한 대안을 찾겠다고 공언을 한 상황이어서 실명제를 과도하게 적용하는 데 부담이 따를 수 있다.

방통위는 1년 가까이 실명제 관련 TF를 꾸려왔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황이다.

특히 소셜 댓글은 블로터닷넷의 도입 이후 주요 언론사와 정부 부처 블로그 등 시지온을 통해서만 110여개 사이트에서 도입하는 등 급속히 확산되는 추세여서 방통위가 실명제 적용 결정을 내릴 경우 파장이 클 수 있다.

여기에 지난해 한 업체가 언론사 사이트 등을 대상으로 일반 댓글 및 소셜 댓글의 악성 댓글 비중을 분석한 결과, 소셜 댓글이 현저하게 건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더구나 실명제는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아이폰에서 국내 계정으로도 유튜브로의 동영상 올리기가 가능한 점 등은 실명제의 맹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실명제 아래에서는 근본적으로 국내에서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글로벌 SNS가 등장하기 어려운 현실도 있다.

국내 사이트와 해외 사이트간의 형평성 문제도 업계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실명제는 기술 발달의 흐름 속에서 더 이상 효력을 상실했다"면서 "국내 사이트가 글로벌 사이트가 되기 위해서는 해외에서 따로 서비스해야 하는 맹점이 따르는데, 이는 단일 플랫폼이 글로벌 플랫폼화되는 추세와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방통위 관계자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답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실명제에 대한 위헌 여부를 심리하고 있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주목받고 있다.

방통위도 헌재의 결정에 목을 매는 분위기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린다면 방통위 입장에서도 족쇄가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헌재의 결정이 내려지면 방통위는 그에 따른 절차를 수행하면 된다"면서도 "그렇다고 결정이 언제 내려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방통위로서도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lkb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