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0]이집트 반정부 시위가 갈수록 격화되는 가운데 정부와의 협상 중재자로 선임된 야당 지도자 모하메드 엘바라데이가 미국이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포기해야 한다고 31일 촉구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지낸 노벨 평화상 수상자 엘바라데이는 이날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30여년 동안 독재를 해 온 무바라크에게 민주주의를 이행하라는 것은 웃음거리(farce)에 불과하다”고 말했다.그는 “무바라크는 당장 ‘오늘’ 이집트를 떠나야만 한다” 며 “미국 정부는 더이상 독재자를 지지하는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시위가 격화되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무바라크에게 전화를 걸어 구체적인 정치 개혁을 요구한 바 있다.하지만 무바라크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는 않았다.미 백악관도 성명을 통해 “이집트 국민 편에 설 것” 이라고 강조했지만 ‘무바라크 체제를 지지하느냐’는 질문에는 정확하게 답변하지 않았다.

이 같은 딜레마는 미국이 중동 최대 동맹이자 미국 중동 외교의 핵심 축인 무바라크를 쉽게 버릴 수 없기 때문에 비롯됐다는 분석이다.미 정부가 이집트 시위대의 요구대로 무바라크 퇴진을 강력히 요구하지 않은 채 그에게 정치 개혁을 압박하는 주된 이유다.만약 무바라크가 퇴진한다면 급진 이슬람 세력이 이집트를 장악할 수도 있다는 예상을 하고 있다.미국으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시나리오다.

이에 대해 엘바라데이는 CNN과의 회견에서도 “미국은 이집트에서 실패한 정책을 추구해왔다” 며 “이집트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신뢰를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날 시위군중을 대표하는 그룹들들로부터 과도정부의 책임자로 지명됐다.엘바라데이는 무바라크가 하야할 경우 임시 대통령을 맡을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집트 국민이 독재체제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가교로서 내가 역할하기를 원한다면 그들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엘바라데이는 지난 27일 밤 귀국한 이래 처음으로 카이로 중심가의 타흐리르 광장에 이날 저녁 모습을 드러내 시위대를 향해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고 있다”고 격려했다.그는 “과도정부 구성을 위해 군부와도 협상을 벌이고 있다” 며 “(군부와) 곧 합의점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군부는 수십년 동안 이집트 권력의 핵심축이었으며,군부 출신인 무바라크의 핵심 지지세력이다.이번 사태를 진정시킬 열쇠를 쥐고 있는 군부가 무바라크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 그의 퇴진이 사실상 확정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실제로 군부도 시위 진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수도 카이로 거리엔 탱크와 장갑차 등이 주요 지역에 배치되고 군인이 곳곳을 장악했지만 군인과 시위대 사이에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일부 시위대는 탱크에 올라가 구호를 외치기도 했고 시위대와 군인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등의 장면도 목격됐다.게다가 이날 오후 4시부터 통행금지가 실시됐으나 시위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무바라크의 퇴진을 촉구했고,군도 통금을 어긴 시위대에 대해 연행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한편 일주일 동안 계속된 시위로 사망자 수는 100여명,부상자는 2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로이터통신은 28일 ‘분노의 금요일’로 카이로 수에즈 알렉산드리아 등 3개 대도시에서 68명이 숨졌다고 전했다.아랍권 위성방송 알자리라는 사망자가 150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