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 관계 전반을 뒤흔들고 있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마당발 인맥과 통 큰 로비 등에서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과 닮은꼴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1997년 '한보사태'의 주역인 정 회장도 현금만 이용한 폭넓은 정 · 관계 로비로 유명하다. 한보사태 때도 정치인 33명이 검찰 조사를 받았고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를 비롯해 정치인과 은행장 등 10명이 구속됐다. "

"김태호 국무총리 지명자의 광폭 인맥이 화제다. 그를 잘 아는 인사들은 그의 사람 지도를 '백지 인맥' 또는 '선 굵은 마당발 인맥'이라고 표현한다. 백지처럼 두루두루 사람을 사귄다는 뜻이면서도 한번 맺은 인연은 절대 놓치지 않는 친화력을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 앞의 것은 2009년 3월24일자,뒤의 것은 2010년 8월11일자 언론 보도다.

김 내정자는 그러나 '40대 젊은 총리''농민 출신의 입지전적 인물'이란 평에도 불구하고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을 벗어나지 못하고 낙마했다. 두 마당발의 악연이었던 셈이다. 며칠 전엔 박연차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광재씨가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강원도지사 직을 잃었다. 게이트는 사실상 마무리됐다지만 이 일로 전 · 현직 국회의원 5명,지자체장 3명,전직 경찰청장을 포함한 전 · 현직 고위관료 7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상 초유 사태의 뿌리도 같다.

'통큰 마당발'사건엔 끝이 없다. 강희락 전 경찰청장을 구속시킨 '함바 비리 사건'도 그 중 하나다. 사건의 주역 유상봉씨가 접촉했다는 인물은 전 · 현직 경찰 고위간부,장 · 차관급 인사,국회의원 등 틀이 따로 없다. 5년 전 정계와 법조계를 흔든 '윤상림 게이트' 재연으로 불리는 이유다. 유씨에 대한 세평 또한 이전의 통큰 마당발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확실하게 뒷바라지하는 스타일이다''주요 보직 인사는 장기적 차원에서 관리했다''철저하게 현금 위주였다'등이다. 강 전 청장도 1998년 서울 중부 경찰서장 시절 처음 만난 뒤 장기 관리 대상이었다고 한다. 강씨의 구속으로 유씨와 연관됐던 이들은 설 연휴가 편치 않을 게 틀림없다.

우리 사회에서'마당발'은 칭찬이다. '마당발로 정평''마당발로 통한다''마당발 인맥으로 유명하다' 등 인물 프로필에 자주 쓰이는 것만 봐도 그렇다. 마당발이 되자면 부지런함이 필수다. 경조사에 빠짐없이 다녀야 하는 건 물론 생일과 기념일을 챙기는 등의 인사치레도 해야 한다. 돈도 돈이지만 상당한 시간이 든다. 그러니 자기 일 하기 바쁜 사람은 마당발이 되기 어렵다. 인맥을 쌓자면 두루 친교를 맺어야 하는 줄 알아도 일에 열중하다 보면 짬을 내기 힘든 까닭이다.

통큰 마당발 때문에 패가망신하는 사례를 보면서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는 과정은 복잡하지 않다. 처음엔 경계했지만 주위에서 다들 안다고 하는 데다 특별히 뭘 요구하는 것 없이 지속적으로 호의를 베푸니 그저 '사람 좋은 아무개씨'로 여기게 됐다는 게 그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형님 아우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사소한 부탁을 거절하기 어렵고 사소한 청을 들어주다 보면 큰 부탁도 외면하기 힘들다. 상식을 벗어난 호의는 언제고 치르게 될 대가를 담보로 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정말 자신을 좋아하고 존경해 그런 줄 알았다면 어리석거나 아니면 스스로 자신을 과대평가한 것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갑으로 사는 데 익숙해 '보험이란 늘 한번의 큰 보상을 바라고 드는 것'이란 단순한 사실을 잊으면 날개를 붙였다는 사실을 잊고 너무 높게 날아올랐다 밀랍이 녹아 추락하고 만 이카루스(Icarus)처럼 되기 십상이다. 어리석음과 탐욕은 파멸의 씨앗이다. 내일모레면 설이다. 신묘년엔 통큰 마당발 좋아하다 이카루스처럼 추락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지혜로운 토끼처럼 자신을 잘 관리하고, 삶의 중심 또한 이익보다 가치에 둬볼 일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