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정부 주최로 홍콩컨벤션센터에서 최근 열린 '아시아금융포럼'에는 세계 30개국 1700여명의 금융인들이 모였다. 이 포럼의 주제는 '세계경제를 재편하는 아시아'였다. 하지만 실제 주제는 따로 있었다. '위안화의 국제화'였다. 참석 연사들은 하나같이 위안화 국제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노먼 찬 홍콩금융청장은 물론 황치판 중국 충칭시장,빅터 펑 홍콩 리&펑그룹 회장 등 홍콩과 중국 측 관계자들은 "홍콩이 위안화 국제화의 관문으로서 역할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존 피스 스탠다드차타드 회장도 기조연설을 통해 "세계 경제의 세 번째 슈퍼사이클이 아시아로 향하고 있으며 그 핵심은 중국의 부상"이라며 "홍콩을 무대로 한 위안화의 국제화도 전망이 밝다"고 치켜세웠다.

심지어 로버트 먼델 미 컬럼비아대 교수(노벨경제학상 수상자)조차 "국제통화인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에 위안화를 포함시켜야 한다"며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는 중국 측 입장을 지지했다. 포럼에 참석한 국내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일반적인 금융포럼이라기보다는 전 세계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위안화 국제화라는 전략을 설파하고 자기들 편으로 포섭하기 위한 장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홍콩 위안화 국제화 전진기지

중국은 2003년부터 시동을 걸기 시작한 위안화의 국제화 전략을 지난해부터 구체화시켜왔다. 그 중심에 홍콩이 자리잡고 있다.

홍콩 현지언론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최근 "홍콩은 이미 위안화 국제화를 위한 관문이자 위안화 역외 시장의 전초기지로 거듭나고 있다"며 "홍콩 금융시장에서 위안화의 비중이 급속히 커진 것이나 무역에서 위안화 거래가 급증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도 위안화를 국제통화로 키우기 위해 홍콩을 활용하려는 전략을 감추지 않고 있다. 아시아금융포럼에 참석한 상푸린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주석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개년 경제계획 기간에 홍콩을 국제 금융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위안화 투자 열풍

홍콩을 위안화 국제화의 전진기지로 삼으려는 중국 측 계획은 이미 상당 부분 진척됐다. 가장 앞선 부분이 위안화 투자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7월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 홍콩에서 위안화 표시 금융상품 판매를 허용한 이후 예금은 물론 보험 채권 펀드 가릴 것 없이 위안화 상품 투자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사이몬 갈핀 홍콩투자청장은 "홍콩 사람들 사이에선 향후 위안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절상돼 예금을 들고만 있어도 돈이 될 것이란 믿음이 강해지고 있다"며 "노후 대비를 위안화 보험으로 하려는 개인들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글로벌 기관투자가들 사이에 홍콩에서 발행되는 위안화 채권(딤섬본드)의 인기도 치솟고 있다. 최근 중국 교통은행이 홍콩에서 발행한 위안화 표시 회사채에는 발행액의 10배가량의 자금이 몰렸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입찰 금리가 연 1% 밑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금리가 하락한 것은 반대로 채권 값이 올라간다는 뜻으로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채권을 사고자 하는 열기가 뜨겁다는 방증이다.

홍콩 정부 통계에 따르면 위안화 투자 붐으로 홍콩 내 금융자금 조달액은 지난해 570억달러(64조원)로 2009년 310억달러보다 80% 증가했다.

◆싱가포르 · 도쿄 제쳐

홍콩이 중국 위안화 국제화를 통해 얻게 되는 가장 큰 소득은 싱가포르 도쿄 등을 누르고 아시아 금융 허브로서의 위치를 굳히게 됐다는 점이다. HSBC 바클레이즈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급성장하는 홍콩의 위안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외환거래센터를 키우고 있다.

홍콩금융관리국 관계자는 "금융허브를 둘러싼 상하이와의 경쟁에서도 지난해 중국 정부가 홍콩은 위안화의 역외중심지,상하이는 역내중심지로 역할 분담을 하면서 판정승을 거뒀다"고 말했다.

홍콩이 위안화 국제화의 전진기지로 주목받으면서 중국 본토기업들의 홍콩 증시 상장도 줄을 잇고 있다. 이에 따라 홍콩 증시에서 중국 관련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7월 말 49.0%로 2001년 25.9%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홍콩=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