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 9일에 이르는 설 연휴 극장가에는 한국영화 바람이 거세다. '실미도'와 '왕의 남자'로 1000만 관객을 각각 돌파했던 강우석 감독과 이준익 감독이 처음으로 흥행 대결을 펼친다. 강 감독의 휴먼드라마 '글러브'와 이 감독의 사극코미디 '평양성'이 그것.연기의 달인 김명민이 주연한 사극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도 경쟁에 가세했다.

할리우드 영화들의 기세도 만만찮다. 동명 원작소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걸리버 여행기3D',신문 재벌 2세의 치기 어린 영웅담을 그린 '그린호넷 3D',일본의 진주만 공습 당시 각국의 긴박한 상황을 그린 '상하이'가 선보인 것.한국과 미국 영화들은 모두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영화를 표방한다. 자극적인 장면을 줄이고 언어를 순화했다.




글러브

퇴물투수와 청각장애 야구부원들이 전국대회 1승에 도전한 실화를 스크린에 감동적으로 옮긴 휴먼드라마.음주 폭행사고로 제명 위기에 처한 프로야구 투수가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 청각장애인 학교 야구선수단의 코치를 맡는다. 청각장애 야구선수들은 타자가 때린 볼 소리를 듣지 못해 제대로 수비할 수 없다. 말도 못하니까 팀 플레이조차 쉽지 않다. 그들은 엄청난 훈련으로 이 난관을 극복해야만 한다. 사회에서 손가락질당하는 코치와 학생들이 서로 보듬으면서 전진해가는 여정을 통해 묵직한 울림을 전해준다. 장면마다 웃음을 이끌어내는 것도 강점이다. 정재영 · 유선 주연.




평양성

이준익 감독이 2003년 '황산벌'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속편 코미디.백제를 멸망시킨 신라군이 당군과 연합해 고구려군과 평양성 전투를 벌인다. 신라 총사령관 김유신(정진영)과 당나라 총사령관 이적(이대연)의 두뇌싸움,고구려군의 남생(윤제문)과 남건(류승룡)의 갈등이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중심 인물은 역시 전라도 벌교 출신의 사병 '거시기'(이문식)다. 황산벌 싸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그는 신라군에 편입됐다 고구려군 포로가 되지만 곡절 끝에 고구려 여인 갑순(선우선)과 혼례를 치른다. 권력자가 아니라 민초의 관점에서 전쟁 이야기를 풀어낸 것.늙은 여우 같은 김유신 역을 해낸 정진영,극의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류승룡,정감있는 사투리의 달인 이문식의 호연이 돋보인다.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

김탁환의 소설 '열녀문의 비밀'을 원작으로 한 탐정극.공납 비리에 연루된 관료들의 음모를 감지한 정조는 조선 제일의 명탐정(김명민)에게 사건의 실체를 수사하라는 밀명을 내린다. 명탐정은 첫날부터 자객의 습격을 받지만 개장수 서필(오달수)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두 사람은 조선의 '셜록 홈즈와 와트슨'으로 짝을 이뤄 사건의 몸통으로 다가선다. 명탐정은 천재성을 발휘하다가도 때때로 실수하며 관객들을 웃긴다. 진지한 캐릭터들로 인기를 모았던 김명민이 우스꽝스런 인물로 변신한 게 흥미롭다. 오달수의 명풍 조연 역도 재미를 배가시킨다. 추리극의 긴장감에다 어드벤처와 코미디가 혼합된 퓨전 사극.김석윤 감독.




그린호넷 3D

할리우드 슈퍼영웅 중 가장 미숙한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인물을 그린 액션대작.미디어 재벌의 외아들인 브릿(세스 로건)은 매일 파티만 즐기며 소일하는 한량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한 뒤 그의 유지를 받들어 의미 있는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선친의 친구이자 직원이었던 케이토(주걸륜)와 힘을 합쳐 슈퍼 히어로로 활동을 개시한다. 아시아계인 케이토는 무술 실력이 수준급이고 신무기를 만들 수 있는 천재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악당을 잡기 위해 스스로 악당 짓을 하는데….캐머런 디아즈가 브릿의 비서 역으로 두 영웅 사이로 끼어든다. 할리우드의 다른 슈퍼영웅전에 비해 액션의 강도는 약한 편이다. '이터널선샤인'의 미셸 공드리 감독.




걸리버 여행기

뉴욕 신문사에서 10년째 우편관리를 하던 허풍쟁이 걸리버(잭 블랙)의 모험기.짝사랑하는 달시(아만다 피트)에게 허풍을 늘어놓은 덕분에 졸지에 버뮤다 삼각지대 여행 취재를 맡게 된다. 그는 난데 없는 급류에 휘말리며 소인국 '릴리풋'에 표류한다. 이곳에서 뉴욕의 '찌질남' 걸리버는 '영웅'으로 성장하게 된다. '루저'들의 희망가다. 자신감과 용기를 갖고 도전하면 못할 일이 없다는 교훈을 전해준다. 정상인과 소인들이 한 장면에 등장하는 특수효과와 3D(입체)장면들은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붙들 전망이다. '몬스터대 에일리언'의 롭 레터맨 감독이 연출했다.



상하이

설 연휴 개봉작 중 가장 진지한 드라마.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거대한 음모를 다룬 영화.존 쿠삭,궁리,저우룬파(周潤發),와타나베 켄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대거 출연했다. 1941년,동서양 각국 요원들이 암약하는 국제도시 상하이에서 미국 정보부 요원인 폴(존 쿠삭)은 동료의 살해 사건을 은밀히 수사하기 위해 기자로 위장한다. 그는 상하이 삼합회 보스(저우룬파),그의 매혹적인 아내 애나(궁리),일본 정보부의 수장 다나카 대좌(와타나베 켄) 등과 만나면서 2차대전과 얽힌 음모에 휘말린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서도 첩보 액션의 서스펜스,로맨스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미카엘 하프스트롬 감독.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