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의 재정적자가 글로벌 경제의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지난 27일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전격적으로 강등시킨 데 이어 무디스도 미국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을 경고하고 나섰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과 일본 정부에 "시장이 등을 돌리기 전에 재정적자 감축 대책을 시급히 내놓으라"고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그리스 아일랜드 등 유럽 국가의 재정 위기로 가려졌던 미국과 일본의 재정적자 문제가 수면 위로 급부상하는 양상이다.

물론 막강한 '달러 파워'를 지닌 미국과 경상수지 흑자국인 일본이 유럽 국가처럼 당장 재정 위기를 맞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계속 늘어나는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조절하지 않으면 세계경제에도 적지 않은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특히 미국 일본의 신용등급 불안이 장기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경우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글로벌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된다. 시장이 미국과 일본에 '책임 있는 재정수지 개선'을 촉구하고 있는 이유다.

◆美 · 日재정,외형상으론 유럽보다 심각

미국과 일본의 재정상태는 표면적으로 유럽보다 심각하다. 일본의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204%에 달한다. 대부분 선진국이 80~90%대인 것에 비하면 두 배 이상 높다. 특히 재정위기에 휩싸인 그리스(137%)와 아일랜드(113%)보다도 심각하다.

문제는 국가부채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란 점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복지비용이 팽창하는 데 반해 경제성장은 정체돼 정부가 빚을 늘릴 수밖에 없어서다. IMF는 일본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올해 말 227.1%,내년 말 234.6%,2014년 말 247.7%,2015년 말 250% 등으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일본의 GDP 대비 부채비율이 2020년엔 300%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 의회 산하의 예산분석기구인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연방정부의 2011회계연도(2010년 10월~2011년 9월) 재정적자는 1조4800억달러(1648조72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6개월 전 전망치보다 4000억달러 이상 늘어났다. 이 같은 재정적자는 GDP의 10.8% 규모다. 선진국 중 가장 높다. 올해 적자가 늘어난 것은 의회가 지난 연말 부유층을 포함한 전 계층에 대한 감세조치 연장법안을 통과시켜 그만큼 세수가 줄어들 전망이어서다.

미국 연방정부의 작년 말 부채는 13조9000억달러다. 재정적자가 늘면 정부 부채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CBO는 2020년까지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연평균 5.9%까지 올라갈 경우 매년 이자로만 7780억달러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미 정부의 한 해 국방비 규모와 맞먹는다. 미국은 이 이자를 갚기 위해 빚을 더 내야(국채발행) 할 형편이다.

◆세계경제 새 불안요인 될지 주목

미국과 일본의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부각되면서 글로벌 재정위기 확산의 우려도 퍼지고 있다. 유럽 국가의 재정위기가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 미국 일본으로 연쇄 파급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미 · 일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이 일제히 재정위기를 맞으면 글로벌 경제가 파탄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공산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본의 경우 가계 금융자산이 1500조엔으로 국가채무(943조엔)보다 훨씬 많다. 이처럼 막대한 국내 자본이 국채의 95%를 소화하고 있다. 국가신용등급 하락에도 일본 금융시장이 담담한 이유다. 더구나 일본은 꾸준한 경상흑자국으로 외환보유액이 1조1161억달러에 달해 중국(2조8500억달러)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많다. 국내 금융자산과 외환보유액은 일본의 재정 파탄을 막아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미국은 올해 GDP 대비 재정적자가 10%를 넘어 일본보다 높지만 국가채무비율은 100% 수준으로 일본의 절반밖에 안 된다. 더구나 미국은 달러라는 세계 최강의 기축통화를 갖고 있다. 국가 부도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지속적인 재정적자로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국채금리(장기금리)가 올라 국가채무 부담이 감당 못할 수준까지 치달을 순 있다. 장기금리 상승은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의 회복을 막는 등 파괴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경고도 있다.

도쿄=차병석/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