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었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자 회사는 휘청거렸습니다. 20억원이 넘는 상속세가 부과됐고 사내 2인자였던 전무는 회사를 나가 동종회사를 차렸지요. 최고경영자(CEO)가 공석이 되자 외국 업체들의 인수제안도 들어왔고요. 결혼하고 20여년간 전업주부였던 어머니가 경영을 맡겠다고 하자 친인척들을 비롯한 주변에서는 모두 안된다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단호하게 거절하고 경영일선에 나섰습니다. "

김지현 대한엔드레스휄트 감사(35)가 기억하는 1994년 봄의 풍경이다. 김상열 전 사장이 작고하고 부인인 조정교 대표(59)가 경영을 맡은 직후는 51년 역사를 가진 대한엔드레스휄트의 최대 위기였다. 하지만 조 대표는 어머니의 섬세함과 희생정신으로 회사를 살려냈다. 그에게 회사는 시아버지가 기초를 닦고 남편이 키워낸 유산이었고,또 하나의 가정이었다.

조 대표는 "주변에서는 모두 안된다고 했지만 자녀들이 크면 제대로 된 회사를 맡을 수 있도록 내가 지키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흔들리던 대한엔드레스휄트는 2년여의 고생 끝에 제자리를 찾았다. 꾸준하게 독보적인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며 순항했고 오히려 경쟁사가 문을 닫았다. 17년 전 학생이었던 조 대표의 자녀들도 그 사이에 경영 일선에 참여해 조 대표에게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회사 물려받자마자 어려움 봉착

대한엔드레스휄트는 제지용 휄트를 만드는 회사다. 제지용 휄트는 나일론 조직을 짜고 솜을 펀칭하는 방식으로 만드는 시트 형태의 원단이다. 이 시트 위에 죽 형태의 펄프를 올려놓아 수분을 걸러내고 펄프를 성형시키는 역할을 한다. 제지업체들엔 1~4개월마다 바꿔야 하는 소모품으로 제지 종류에 따라 직조 방식과 밀도,재료 등이 달라져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하다. 한솔제지를 비롯한 국내 대부분의 제지업체들이 이 회사의 휄트를 쓰고 있다.

대한엔드레스휄트는 일제시대 개성 시내 양복점을 운영하던 김동혁 전 대표가 한국전쟁 중 모직기계를 들고 부산으로 피난을 와 군용모포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이후 김 전 대표는 군용모포를 응용해 수입에 의존하던 제지용 휄트를 국산화했고 1960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1977년 아들인 김상열 전 사장이 대표로 취임하고 이 즈음부터 국내 제지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면서 회사도 기틀을 다졌다. 당시 대한엔드레스휄트가 거래하는 제지회사는 400여곳에 달했고 직원도 300여명으로 늘었다. 1985년부터는 대만에 수출하는 등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섰다.

1994년 김 전 사장이 작고한 이후에는 아내인 조정교 대표가 가업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김 전 사장과 함께 회사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전무가 회사를 나가 동종업체를 차렸고 핵심인력들도 대거 이탈했다. 하지만 대한엔드레스휄트가 그동안 거래처와 쌓은 신뢰감은 회사가 유지되고 발전하는데 큰 힘이 됐다.

조 대표는 "신생 경쟁사가 거래처를 빼앗아가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동원했지만 거래처들이 믿고 계속 주문을 해준 덕분에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서번트 리더십'도 어려움 속에서 남아있는 임직원을 하나로 묶는데 큰 역할을 했다. 사내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되고 임직원의 복지수준이 향상되자 회사를 떠났던 임직원들도 속속 복귀했다.

대한엔드레스휄트는 여전히 90%를 웃도는 국내 시장 점유율을 보이며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00억원,영업이익은 10억원 수준으로 조 대표 취임 직후보다 2배가량 커졌다. 동남아와 터키,브라질,러시아 등으로 수출이 급증하면서 지난해 말에는 300만달러 수출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수출 대상국은 30여개국.

◆세 남매가 합류하면서 '공격 앞으로'

조 대표가 힘겹게 살려낸 회사에 2001년 '창업3세'들이 합류했다. 조 대표의 삼남매 중 맏딸인 김지현 감사와 둘째 딸인 김선형 이사(33)는 이 해에 입사했다. 그러나 김 감사와 김 이사가 퀘퀘한 섬유공장을 박차고 나가 한때 어머니의 속을 아프게 했다. 김 감사는 전공인 성악을 해보겠다고 유학을 떠났고 김 이사도 다른 직장을 다녔다. 하지만 다시 회사로 돌아와 '천군만마'가 되고 있다. 2008년에는 아들인 김재욱씨(30)가 합류했다.

3세들이 경영에 참여하면서 조 대표의 내실 위주 경영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그는 회사를 무사히 지켜야 한다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들 삼남매는 '공격 경영'에 지향점을 두고 있다. 우선 10% 남짓인 영업이익률을 끌어올리고 신규사업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 김 감사는 "국내 시장을 거의 독과점한 상황에서 제지용 휄트 내수 시장만 쳐다봐선 변화가 힘들다"며 "경영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3세들이 경영에 합류하면서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해에만 국내 최대 규모의 광폭특수직기를 들여오고 솜펀칭성형기를 마련하는 데 25억원을 썼다. 연 매출의 4분의 1을 설비투자에 활용한 것이다. 이와 함께 섬유공학과 출신들을 채용해 기획실을 신설,신사업 찾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조 대표는 "휄트는 응용할 수 있는 분야가 상당히 많다"며 "폐수처리용 여과포 등 다양한 아이템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 · 개발(R&D) 강화를 위해 연구소 설립도 추진 중이다.

부산=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