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름값이 묘하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진 지난 13일.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등 4대 정유사에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조사는 17일까지 나흘간 이어졌다. 공정위는 1994년 석유가격 고시제 폐지 이후 한번도 공개되지 않은 석유제품의 원가 자료까지 가져갔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칼로 무 자르듯 원가를 계산하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결국 기름값을 낮춰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2.최근 공정위 조사를 받은 대형 식품업체 A사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공정위 조사관들이 직원들의 PC와 수첩 메모까지 뒤졌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회사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회사 관계자는 "대체 뭘 조사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개인 자료까지 들춰낸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부가 연초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공정위가 '월권'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기름값은 물론 쌀 밀가루 설탕 두부 콩나물 등 서민 생활과 밀접한 94개 생활필수품을 대상으로 사상 최대 규모의 '직권조사'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 대형마트 TV홈쇼핑 등 대형 유통업체 48곳도 직권조사를 받고 있다. 직권조사는 제보나 뚜렷한 혐의없이 공정위 자체 판단에 따라 조사에 나서는 것을 말한다.

업계는 제품 가격을 올렸거나 가격 인상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공정위가 조사의 칼을 빼든 경우가 많다고 토로하고 있다. 공정위 내에서조차 "과거에는 담합이나 불공정거래 혐의를 충분히 잡고 조사를 나갔지만 요즘은 충분한 준비 없이 나가는 경우가 많아 헛발질할 확률이 높아졌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전문가들은 특히 공정위가 기업들에 원가 자료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조사권 남용이자 시장경제의 근본을 위협하는 행위로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조사를 마쳐야 한다'는 공정거래법 조항(제50조2)에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정위가 물가기관을 자처하고 물가 잡기에 앞장선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소리"라며 "물가를 잡기 위해 직접적으로 기업을 압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