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중 윈스턴 처칠은 러시아를 탈출한 생화학자 하임 바이츠만을 영국 해군본부에 배치했다. 아이디어를 구한다는 회람을 본 바이츠만은 폭탄 제조에 필요한 아세톤을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처칠은 아세톤 3000t을 요구했다. 바이츠만은 대량생산이 가능하도록 설비를 확장하고 아세톤 원료인 마로니에 열매 수집 총책이 됐다. 시온주의자였던 바이츠만은 그 대가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나라를 세울 수 있도록 지원해줄 것을 요구했다. "

《(우리가 미처 몰랐던) 편집된 과학의 역사》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책엔 이처럼 우리가 알지 못했던 사실,널리 알려진 것과 다른 내용이 수두룩하다. 저자는 케임브리지대 클레어컬리지 선임교수로 과학사와 철학을 강의하는 여성 학자다. 그는 이 책에서 과학의 기원부터 과학과 정치 · 경제 · 산업의 연관성까지 꼼꼼히 살피는 한편 유럽 중심적이고 남성 위주였던 기존 과학사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또 위대한 과학자는 정교한 실험과 논리적 추론 그리고 때로는 번뜩이는 상상력에서 영감을 얻으며 자연의 비밀을 풀고 절대 진리를 향해 나아간 줄 알고 있지만 실은 실수하고 경쟁자를 짓밟는가 하면 과학이 지겨워 다른 일을 기웃거린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적었다. 아이작 뉴턴은 전문 물리학자와는 거리가 먼 연금술사이자 혜성 연구가였고,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선동가였다는 것이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중력을 발견했다는 건 주위사람들에 의해 포장된 얘기란 설명이다.

오늘날 생명공학의 기초가 된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나선형 DNA 구조 발견 또한 알고 보면 여성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연구를 슬쩍한 것이란 지적도 있다. DNA 구조에 대한 움직일 수 없는 증거는 1952년 5월 프랭클린이 찍은 송아지 흉선 X레이 사진이었는데 왓슨은 모리스 윌킨스가 유출해준 이 사진에서 결정적 실마리를 얻고도 모른 체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같은 맞춤약도 대상에 따라 개발돼 시판되는 시간에 상당한 차이가 났다고 꼬집었다. '1957년 미국은 월경불순 치료 명목으로 피임약을 승인했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매일 7000만명 이상이 복용한다. 여성을 위한 피임약은 상용화되기까지 40년이 걸린 데 비해 비아그라는 거대 제약회사들의 자금력에 힘입어 불과 몇 개월 만에 심사기관을 통과했다. '

그는 4000년에 걸친 과학사를 정리하면서 뛰어난 과학적 업적은 야누스의 얼굴을 지닌다고 말했다. 살충제 개발로 식량생산은 증가하고 기아는 줄었지만 자연의 먹이사슬은 파괴됐고,온난화는 지구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방대한 책을 내놓은 데 대한 그의 변은 우리가 왜 과학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한다. '과거를 돌아보는 이유는 우리가 어떻게 이 자리에 왔는지 아는 동시에 보다 나은 미래를 얻기 위한 것이다. '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