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은 사서 묻어 둬야 한다"는 월가의 오랜 투자 격언이 설땅을 잃어가고 있다. 컴퓨터를 통한 초단타 거래(high frequency trade)와 다크풀(dark pool) 및 상장지수펀드(ETF) 거래가 증시를 주도하면서 월가의 투자 행태가 크게 바뀌었다.

미 경제전문 방송인 CNBC는 일부 증권사 추정을 인용해 초단타 거래가 하루 전체 주식 거래량의 70%로 증가했다고 4일 보도했다. 초단타 거래가 늘어날수록 평균 주식 보유기간은 줄게 된다. 증권 투자정보 제공업체인 크로스커런스 뉴스레터는 요즘 미국의 평균 주식 보유기간은 2.8개월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1980년대에는 2년 정도였다.

뉴스레터의 앨런 뉴먼 발행인은 "기술 발달로 인해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을 거두려면 매수 후 보유 전략이 유리하다는 이론이 완전히 폐기됐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초단타 거래를 통해 수초 혹은 수분 만에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사실에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트레이더들은 ETF 시장 팽창도 또 다른 주식거래 행태 변화 요인으로 꼽고 있다. 투자자들은 굳이 개별 종목에 투자하지 않고도 특정 부류의 주식을 편입해 만든 펀드를 기초로 발행한 증권을 편리하게 사고팔 수 있게 됐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회사인 블랙록은 지난해 말 현재 ETF 시장 규모가 1조달러를 웃돌 것으로 추정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S&P500의 10개 분야 지수가 모두 2년 연속 상승한 것도 ETF 시장이 급격히 성장한 데 따른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장 시작 전 기관투자가들 간 거래 형태인 다크풀도 작년 12월 중 전체 거래량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최근 거래가 급증하는 추세다. 장외거래 비중이 높아지면 결과적으로 시장에서 적정 가격을 찾아가는 과정에 왜곡 현상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증권 감독당국이 거래제한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자문을 제공하는 증권 거래전문가인 살 아누크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100여년 동안 자본조달 역할을 해온 주식시장이 최근 10년 새 카지노판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투자 행태가 초단기화되면서 증권시장의 시스템 위험(리스크)이 커졌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주식의 고유 가치를 분석해 투자를 결정하기보다는 다른 투자자들의 매매 행태를 엿보면서 수익을 얻으려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주식 변동성이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지난해 말까지 3개월 새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중소 규모 회사로 구성된 '러셀2000'이 대형주 지수보다 두 배 이상 오르는 현상이 빚어진 것도 비슷한 요인 탓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머니매니저인 조슈아 브라운은 "주식시장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데 1년이면 충분할 정도도 시장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SEC는 투기적 거래 비중이 높아지면서 주가가 급등락하는 현상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거래투명성 강화 방안 마련을 추진 중이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


◆ 초단타 거래

high frequency trade.고성능 컴퓨터의 월등한 속도를 통해 극히 짧은 시간에 거래하는 것으로 일반 투자자들보다 먼저 주문정보를 알아내 매매하면서 문제가 됐다. 작년 5월6일 미국 증시 '순간 폭락(flash crash)' 사고의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 다크풀

dark pool.장 시작 전 기관투자가로부터 대량 매수·매도 주문을 받은 뒤 장이 끝나면 거래를 체결하는 시스템이다. 당일 거래량을 가중 평균해 가격을 매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