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 갔지만 … 미아리 점집촌엔 '새해운세 행렬'
점의 대명사인 서울 미아리 점성촌(村).매년 이맘때면 이곳은 새해 운세를 점쳐보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20년 전 100곳 이상이던 점집은 이제 절반으로 줄었지만 경인년과 신묘년을 잇는 31일 복채 3만~5만원을 들고 '고민 집합소'로 향하는 손님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전성기는 갔지만 그래도…"

예전의 미아리 점성촌은 아니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던 수많은 점집은 사라지고 50여곳 정도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불어닥친 주변 재건축과 인터넷 운세 열풍 탓에 기세가 많이 꺾였다. 주민 김귀훈씨는 "1990년대 초반엔 시각장애인 역술인을 차로 실어주고 그 운임으로 생계를 잇는 사람들이 급증할 정도로 이 지역 경제 파급력이 컸었다"고 말했다. 인근에 줄줄이 들어서는 패스트푸드점과 커피전문점 사이에서 생존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점집은 줄었지만 '점집 하면 미아리'라는 브랜드 파워(?) 덕에 충성도 높은 중 · 장년 단골은 여전히 많다. 사주카페나 인터넷 운세와는 '수준이 다르다'는 자부심도 여전하다. 이제환 경신연합회 무속연구소장은 "사주카페 같은 데서 젊은이들에게 돈 몇 푼 받고 가볍게 봐주는 점은 점이 아니다"며 "미아리 역술인이나 무속인은 이들보다 더 진지하게 인간의 본질을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신묘년 국운? 쉿! 천기누설이야"

새해 우리나라 국운이 어떠냐고 물으면 이들은 대부분 즉답을 피한다. 주역을 보면 국운을 점칠 수 있지만 이것을 함부로 입 밖에 내는 것은 '천기누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여성 역술인은 "경인년인 지난해 전쟁이 날 듯한 기운이 많았는데 실제로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라는 큰 일을 겪었다"며 "신묘년을 기점으로는 이런 시국에서 벗어나 큰 위기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역술인 김모씨는 "이미 보긴 했지만 말해줄 수는 없다"며 웃음지었다.

◆"실직 · 이혼 얘기가 너무 많았어"

자신의 이름을 건 철학관을 운영하는 김익중씨는 "올해도 '회사에서 잘렸다''사업을 하는데 돈이 잘 안 돈다'는 식의 경제문제 상담이 많았다"고 전했다. 무속인 이모씨는 "전에는 '남들은 다 잘 나가는데 나는 왜 일이 안 풀리냐'며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샌 너나없이 '죽겠다'고만 했다"며 "새해엔 손님들의 소원이 다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 고객인 중년 여성 중 이혼을 고민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모란여성거북점 이선복씨는 "예전엔 아이문제 상담이 제일 많았는데 요샌 이혼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주부들이 많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씨는 "오늘도 최근 이혼한 한 50대가 '평생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을 겪어 가슴이 찢어진다'며 너무 서럽게 울어 나도 함께 울었다"면서 "좋은 수,안 좋은 수를 조언해주는 것 외에 심리 치료까지 도와주는 게 우리가 할 일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